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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강화? 약화?... 혼돈ㆍ상충의 대입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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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강화? 약화?... 혼돈ㆍ상충의 대입정책

입력
2018.04.02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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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주요 사립대 정시 확대 요청

절대평가 밀어붙인 기존정책과 충돌

연세대 시작으로 정시 확대 나설 듯

수시선 최저기준 폐지로 수능 무력화

수험생ㆍ학부모 “어느 장단에 춤추나”

3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교육적페 청산을 위한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저학력기준 폐지 반대 및 김상곤 교육부 장관 퇴진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교육적페 청산을 위한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저학력기준 폐지 반대 및 김상곤 교육부 장관 퇴진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강남에서 내신 4등급이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1등급 나오는데 정시를 늘리면 이 지역 아이들이 손해 볼 건 없죠.” 지난 달 30일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현재 고2 학생이 치르는 2020학년도 입시에서 서울 주요 사립대에 정시모집 인원 확대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대치동 학원 관계자가 보인 반응이다. ‘깜깜이 전형’ 비판을 받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폐해를 보완하려는 고육책이라지만 그 혜택은 수능에 강한 서울 강남 수험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설명이었다.

# 바로 다음날 시민단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서울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최저기준이 없어지면 수능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낳아 정시 비율이 줄고 사교육이 좌우하는 수시 영향력만 커질 것이란 우려였다. 앞서 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하는 대학에 보다 많은 금전적 지원을 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에 대한 반발이었다.

대입 정책을 둘러싼 교육 당국의 오락가락 행보에 학생ㆍ학부모들의 속이 타 들어 가고 있다. 수능 변별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절대평가 확대를 추진해 왔으면서 정작 수능 위주 전형인 정시 비중을 늘리겠다고 한다. 한편에선 수시에서 그나마 가장 객관적 평가 지표인 수능 최저기준을 없애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공정성을 상실해 비난 여론에 직면한 학종의 신뢰도는 더욱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수능을 강화하겠다는 건지, 죽이겠다는 얘긴지, 앞뒤가 맞지 않은 정책 앞에 교육 현장의 혼란만 가중되는 형국이다.

교육부 지침은 주요 대학에 즉각 영향을 미쳤다. 연세대는 1일 2020학년도 입학전형 시행계획안을 공개하고 수시 수능 최저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시모집에서 전년도보다 12.7% 증가한 1,136명을 선발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그러면서 “정시는 수능 중심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다른 대학들도 정시 규모를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두 가지 전혀 상반된 조치에 몹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시민단체 주장처럼 최저기준 폐지는 수능을 약화시키는 반면, 정시 확대는 사실상 수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도 정시모집에서 수능 중심 전형 비중은 무려 87.1%에 달한다. 지난달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처음 등장한 ‘최저기준 폐지 철회’ 글에는 지금까지 8만1,100여명이 동의했다.

게다가 정시 확대는 수능 절대평가 확보를 줄곧 밀어붙여 온 현 정부의 대입 정책과도 상충되는 측면이 많다. 역대 정부가 ‘수시 확대ㆍ정시 축소’ 기조를 꾸준히 유지한 결과 2007학년도에 수시ㆍ정시 모집 비율이 첫 역전(51.5 대 48.5)된 이후 정시 비중은 계속 감소해 2019학년도엔 23.8%까지 쪼그라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입시에서 영어영역에 처음 적용된 수능 절대평가제를 2021학년도부터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게 대표적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동점자가 많은 절대평가로 전환할 경우 수능 변별력은 당연히 약화하기 때문에 정시 비중을 줄인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왔다”며 “시장은 8월 나올 대입제도 종합 개편안에서도 방향성이 크게 바뀌질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갑자기 정시 확대로 돌아선 건 의외”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로 갑자기 변화를 맞게 된 고2 학생은 물론, 2021학년도에 대학에 들어갈 고1 학생 및 학부모들이 느끼는 혼란은 상상 이상이다. 정시 확대 기조가 유지될지 확신할 수 없는데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올해부터 교과목 내용도 상당 부분 바뀌었다. 학부모 김모(48)씨는 “아들이 문과를 택할 예정인데 수능에 삼각함수가 포함되고 내신도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는 말이 많아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모순된 상황은 정부가 공정성 확보에만 매달려 땜질 처방을 반복한 탓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교육부는 수요자 부담 경감을 이유로 사교육 효과가 큰 수시 논술ㆍ교과특기자 전형 폐지, 대입 전형 단순화 등의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수시에 수능을 반영하지 않을 경우 가뜩이나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난을 받는 학종은 사교육 혜택을 받아 내신(학생부) 성적이 좋은 학생들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내년도 입시에서 서울ㆍ연세ㆍ고려대는 전체 모집정원(1만1.133명)의 절반이 넘는 6,455명(58.0%)을 학종으로 뽑는다. 4년 사이 19.1%포인트나 높아진 수치다. 이진청 서울 고교진로진학상담협의회 의장은 “단순히 수시ㆍ정시 모집 비율을 조정한다 해서 정부가 목표로 하는 공교육 정상화를 달성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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