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南 예술인 평양 공연
‘北 좋아하는 얼굴’ 서현이 사회
조용필 백지영 강산에 이선희 등
남측 가수 11팀 2시간여 열창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피날레
1500명 관객 기립박수로 인사
이대로 한반도에 봄이 올까.
1일 평양에서 한국 가수들이 공연했다. 조용필, 이선희부터 아이돌그룹 레드벨벳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 11팀이 북한 주민에게 한국 음악을 들려줬다. 남북관계 해빙의 열망을 담아 ‘봄이 온다’고 이름 붙인 공연이다. 공식 이름은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올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한국 공연에 화답하는 공연이자, 이달 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의 사전 행사다. 봄의 기운이 아직은 미미하지만, 한반도를 휘감은 겨울의 장막이 조금씩 걷히고 있는 건 분명하다.
1,500석 규모의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공연은 오후 6시30분(북한 시간 오후 6시) 시작해 2시간 가량 이어졌다. 사회는 아이돌그룹 소녀시대 멤버로, ‘북한 주민들이 좋아하는 얼굴’로 알려진 서현이 맡았다. 그는 “남과 북, 북과 남의 관계에 희망이라는 꽃이 피어나고 있다”고 인사했다. 첫 무대는 정인과 알리. 윤연선의 ‘얼굴’을 함께 불렀다. 이어 백지영이 ‘총맞은 것처럼’과 ‘잊지 말아요’를 불렀다. 북한 당국이 한국 문화를 혹독하게 차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총 맞은 것처럼’은 북한 주민들의 애창곡이라고 한다. 강산에는 실향민인 부모의 얘기를 담은 ‘라구요’와 ‘명태’를 이어갔다. 윤도현 밴드는 록 버전으로 편곡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한반도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거리를 뜻하는 ‘1178’을 불렀다. 레드벨벳은 ‘빨간 맛’ ‘배드 보이’에 맞춰 발랄한 춤을 선보였다. 레드벨벳 예리는 공연 직후 인터뷰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북한 주민들이) 크게 박수를 쳐 주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번 공연을 앞두고 노래 가사나 춤 수정을 전혀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 최진희가 ‘사랑의 미로’를 불렀다.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좋아한 그는 한국 가수 중 최다 북한 공연 기록(4번)을 썼다. 그는 ‘김정일∙김정은 부자 앞에서 노래한 한국 가수’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이선희는 ‘J에게’와 ‘아름다운 강산’ 등을 불렀고,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밴드는 ‘그 겨울의 찻집’ ‘꿈’ ‘단발머리’ 등을 연주했다. 김정일 전 위원장이 즐겨 들어 북한 주민들에게도 익숙한 노래들이다. 서현은 북한 최고 가수 김광숙의 ‘푸른 버드나무’를 불렀다. 이어 방북 예술단 감독인 윤상이 편곡한 ‘친구여’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북한 노래 ‘다시 만납시다’를 가수들이 합창하며 공연을 마쳤다. 레드벨벳 슬기를 비롯한 일부 가수들은 눈물을 보였다. 가수들이 퇴장하자 북한 관람객은 기립 박수로 인사했다. 한국 예술인의 평양 공연은 2005년 조용필 단독 콘서트 이후 13년 만이다. 한국 예술단은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북한 예술단과 합동 공연을 펼친다.
평창동계올림픽 때에 이어 태권도 교류도 이뤄졌다. 1일 평양태권도전당에서 한국 태권도 시범단이 50분간 단독 공연했다. 북한 주민들은 격파 공연에 흥겨워했고, 시범단이 클럽댄스 음악 반주에 맞춰 공연하자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다만 한국 최고의 인기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Fire)’를 배경음악으로 쓴 무대가 펼쳐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러 관람객의 표정이 굳었고 박수를 유도해도 반응하지 않았다.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과 김영호 내각 사무장, 김경호 조선태권도위원회 위원장, 김춘식 국가체육위원회 서기장 등 북한 요인들이 공연을 지켜봤다. 2일엔 평양대극장에서 남북한 합동 태권도 공연이 열린다.
방북 예술단장인 도종환 장관은 31일 방북단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남북 언어학자들이 25차례나 만나면서 추진해온 겨레말큰사전 편찬작업이 2015년 중단됐는데, 재개하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해 중단된 개성 만월대 발굴사업 재개와 올 8월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 남북 공동 입장 등도 제안할 방침이다. 도 장관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선 “일단 정상회담이 있고 큰 틀에서 풀어야 풀리는 것이다. 제가 먼저 언급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평양공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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