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30일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이라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비핵화 구상을 밝힌 뒤 우리 정부 또한 일괄 타결론에서 돌아섰다는 비판에 대한 해명 차원에서다. 이 관계자가 비록 사견을 전제로 말했지만 앞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일괄 타결론을 설명했던 당사자로서 오락가락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종 조율의 대상인 비핵화 방식을 두고 북미는 물론 한미까지 갈라 치려는 일부의 의도가 불순하긴 하지만 중차대한 안보현안을 안이하게 다루는 방식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중국이 북한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비핵화 협상이 엄중한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을 감안하면 보다 신중하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서 성급하게 남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했지만 지금은 남북미중 4자 구도에 맞춘 비핵화 로드맵이 한결 절실해졌다. 문 대통령을 만난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국무위원이 당장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방식을 설명했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중국의 ‘쌍궤병행(雙軌竝行)’ 주장이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북과 중국은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이 문제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중단 없는 제재만 반복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중의 간극이 너무 크다. 게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북미협상에 연계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엉뚱한 발언까지 나왔다. ‘위대한 합의’라며 사실상 재협상 종료를 선언한 지 하루 만에 말을 뒤집은 것은 대북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에 동조하라는 압박과 다름없다.
변화한 사정을 감안하면 남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을 연결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이미 북중 관계복원이 대북제재 공조를 헐겁게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중 패권경쟁 가운데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패감으로 활용한다면 자칫 한미와 북중 대결 구도만 부각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로 가는 길의 복병과 난관이 확인되는 형국이다. 하지만 25년 간이나 국제사회를 괴롭혀 온 북핵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기란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자 절호의 기회라는 인식과 인내심을 가져야 하며, 국민적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 북한과 중국을 만나는 과정에서 확보한 정보를 미국과 숨김없이 공유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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