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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글이 피라면 책은 박동하는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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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글이 피라면 책은 박동하는 심장

입력
2018.03.29 17:3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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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편집자 김민정(오른쪽)과 인터뷰 중인 은유 작가. '출판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이 발 디디고 서 있는 출판 노동의 현장을 둘러본다. 제철소 제공
문학편집자 김민정(오른쪽)과 인터뷰 중인 은유 작가. '출판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이 발 디디고 서 있는 출판 노동의 현장을 둘러본다. 제철소 제공

글쟁이 은유가 출판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모았다. 우아한 백조가 물속에선 발버둥치고 있듯, 시장과 자본을 비웃는 인문정신이 충만한 출판계도 책에서 벗어나자마자 시장과 자본을 탐닉하며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겨 댄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글쟁이들에겐 그저 그렇고 그런 얘기일 법 한데, 은유는 그들을 만나 기록을 남기기로 헸다. “레드카펫 위 주인공보다는 그 레드카펫을 준비하고 깔고 치우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는 개인적 성향” 탓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윤리적 결단이기도 하다. “타인의 노동에 대한 무지와 알려고 하지 않는 습관적 게으름”을 버리기 위한 것이다. 최소한 자기가 발 디디고 서 있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가 만난 이들은 이렇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를 쓴 시인 박준을 발굴해 낸 문학편집자 김민정,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작업한 번역자 홍한별, ‘호프만의 허기’나 ‘저체온증’ 등의 소설에서 감각적 디자인을 선보인 북디자이너 이경란, 온라인서점 인문ㆍ사회 MD로 높은 지명도를 갖춘 박태근, ‘사적인 서점’을 운영 중인 정지혜, 1인 출판사 코난북스의 대표 이정규 등 10명.

이들이 하나같이 입 모아 말하는 것은 아무리 잘난 책이라도 상품인 이상 궁극적으로는 시장에서 팔려야만 한다는 당위다. 그 당위란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가 말한 ‘필사적 도약(Salto Mortale)’이다. 인문사회 MD로 유명한 박태근 또한 “많이 팔리는 책엔 미덕이 있다” “대중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고 강조한다.

출판하는 마음

은유 지음

제철소 발행ㆍ344쪽ㆍ1만6,000원

은유는 리베카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에서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 박동하는 심장이다”란 말을 인용해 두고 이리 고백한다. “나는 글과 책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이 내 안에서 도는 피라면,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 박동하는 심장이다. 책은 누군가에게 읽힐 때만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묘한 엇갈림은, 책은 그렇게 사고 팔기만 하는 물건을 뛰어넘는다는 데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팔다리 엉덩이가 아니라, 왜 하필이면 글은 ‘피’겠으며, 책은 ‘심장’이겠는가. 1만6,000원짜리 상품으로 시장에 던져진 이 책 ‘출판하는 마음’의 세일즈 포인트만 해도 책과 관련된 무언가를 해 보려는 이들을 위한 가이드북일 게다. 하지만 과도한 자의식 없이 담백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맛깔나게 써내려 간 은유 작가의 문장들이, 인터뷰 중간중간 여기저기 툭툭 부려 놓은 글과 책에 대한 좋은 글귀들이, 오히려 더 큰 포만감을 준다. 본전 생각을 깜빡 잊게 만드는, 글과 책의 세계는 이래서 치명적이라는 걸 보여 주기라도 하듯.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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