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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공예, ‘더 잘 만든 것의 아름다움’

입력
2018.03.29 15: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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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명함의 뒷면에는 ‘끌과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목수’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집을 짓는 목수를 대목(大木), 창호와 가구 등을 만드는 목수를 소목(小木)이라고 한다. 흔히 목수라고 하면 대목을 먼저 연상하기에 구구한 설명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다.

명함을 확인한 사람들은 대개 “어떤 가구가 좋은 가구냐”라는 질문을 건넨다. 상대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대답을 하지만, 사실 한두 마디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이 질문은 ‘공예란 무엇인가’란 대답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다. 공예란 무엇인가 혹은 예술, 디자인과 구별되는 공예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해야 하는 주제인 것이다.

대중의 인식과 달리 공예는 근대에 이르러서야 명칭과 자리를 배정받기 시작한 새로운 문화행위이다. 공예인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책 중에 ‘공예의 발명’이라는 책이 있다. 미술사학자인 글랜 아담스가 2013년에 출간한 이 저술은 현대의 공예 개념들이 18세기에 ‘발명’ 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필자는 18세기라는 시기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공예가 새롭게 발명 혹은 발견된 분야라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공예는 새로운 분야기에 아직 체계적인 이론이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영미권에서는 사회학자 등을 중심으로 2000년대부터 다양한 저술들을 통해 이론화가 진행되고 있으나 국내의 상황은 거의 불모지에 가깝다. 때문에 예술이나 디자인과 구별되는 공예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증된 대답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공예의 아름다움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인 대답은 ‘더 잘 만든 것의 아름다움’이다. 산업화 이후 시대의 모토는 ‘새로움’이었다. 다른 것들과 차별되는 새로움. 새로운 형태, 새로운 색, 새로운 기능, 새로운 이름.

시대에 순응하는 속성을 가진 공예 역시 새로움이라는 시대의 요구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새로움을 구현하는 방식에 있어 공예는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공예는 기본적으로 이전의 것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것보다 더 잘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이전의 것과 달라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 더 잘 만들어서 새로운 것, 그것이 공예가 추구하는 접근방식이다. 공예는 이 지점에서 예술이나 디자인과 구별되기 시작한다.

목가구를 예로 들면 이렇다. 조선 목가구의 명품 중에 사방탁자가 있다. 네 기둥이 있고, 기둥과 기둥을 연결한 가로대(쇠목) 사이에 널판을 끼워 넣어 사방이 트이게 한 쾌적한 구조의 가구이다. 사방탁자를 다시 만든다면, 아마도 예술가와 디자이너는 사방탁자의 일부에 나무 이외의 이종 소재를 쓴다거나 직선인 기둥을 사선으로 휘는 등의 형태적 새로움을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목수는 전통 사방탁자에 사용된 목재보다 더 아름답고 잘 건조된 목재, 목리와 물성에 대한 더 깊은 통찰에서 나온 결구, 현대의 데이터가 적용된 마감법 등에 집중할 것이다. 목수의 관심은 이미 완벽에 가까운 사방탁자의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변수로 남아 있는 물성과 제작과정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예술가/디자이너가 만든 사방탁자와 목수가 만든 사방탁자를 한 공간에서 만난다면 당연히 예술가/디자이너들이 만든 사방탁자가 더 돋보일 것이고, 목수가 만든 그것은 다소 지루하고 심심해 무심코 스치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 무심함과 심심함에 공예가 가진 아름다움이 있다. 좋은 목가구란 ‘더 잘 만든’ 목가구이며, 그 ‘더 잘’은 형태보다는 전체적인 만듦새에 있다. 대부분의 공예가 그렇다. 공예품의 감상법 역시 ‘더 잘 만든 것’이라는 덕목에서 출발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마도 그것이 공예가 가진 아름다움이며,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김윤관 목가구공방 대표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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