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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창출 vs 골목상권 보호…상인들 손 들어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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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창출 vs 골목상권 보호…상인들 손 들어준 정부

입력
2018.03.29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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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점 3700개 점포 들어선

시흥상가 소상공인들과 분쟁

정부 “금천점 3년간 연기” 결정

기업-골목상권 갈등 급증

소상공인 조정 신청 79%나 증가

진보 정권 들어서자 본격 행동

“시흥상가 결정, 유사분쟁에 영향”

한국산업용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7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있는 정부 세종청사 남문광장에서 '유진기업 산업용재 시장 진출 저지'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소상공인 상권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제공
한국산업용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7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있는 정부 세종청사 남문광장에서 '유진기업 산업용재 시장 진출 저지'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소상공인 상권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제공

정부가 시흥공구상가 상인들과 갈등을 빚어온 유진기업의 산업용재ㆍ건자재 시장 진출에 제동을 걸었다. 국정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골목상권 보호’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소상공인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거대 자본의 공습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소상공인의 하소연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게 가장 큰 배경으로 풀이된다. 그 동안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 업체의 사업 진출을 소극적으로 지켜보던 정부가 적극적 개입 기조로 전환한 만큼 향후 유사한 골목상권 분쟁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야 할 정도로 일자리 하나도 아쉬운 정부가 스스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막은 것은 모순이란 지적도 나온다.

골목 소상공인 손 들어줬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8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유진기업 산업용재 시장 진출 관련 사업조정심의회를 열고 권고문을 통해 “유진기업 계열사인 이에이치씨 에이스 홈센터의 서울 금천점 개점을 3년간 연기하라”고 결정했다.

이번 분쟁은 레미콘 사업을 주력으로 해온 유진기업이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에이스 홈센터 금천점’ 등 전국 20개 매장에서 DIY(Do It Yourselfㆍ소비자가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한 것) 가구 중심의 인테리어 상품을 전문 판매하는 사업을 추진하며 불거졌다. 유진기업은 이 경우 최대 500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유진기업은 또 물건을 납품할 325개 중소기업들도 연간 70억~100억원의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간접 고용 창출의 효과도 강조했다.

반면 산업용재를 전문적으로 도매하는 3,700여개 점포가 밀집한 전국 최대 공구 단지인 시흥공구상가 상인들은 “에이스 홈센터 규모(1,795㎡)는 영세 상가 120개 크기”라며 “단순 계산해도 에이스 홈센터가 들어서면 상인 200~30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양측은 영업 방해 여부에 대해서도 확연한 입장 차를 보였다. 유진기업은 에이스 홈센터가 시흥공구상가와 직선 거리로 2.6㎞나 떨어져 있고, 2만2,000여 제품 대부분은 이미 대형마트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만큼 기존 상가 영업에는 악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시흥공구상가 관계자는 “에이스 홈센터와 가장 유사한 H업체 서울 매장 매출 등을 고려할 때 적어도 분기마다 100억원 이상의 수익이 가능해 보인다“며 “이 경우 시흥공구상가 상권의 60~70%는 궤멸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첨예한 갈등에 정부는 중재에 나섰다. 중소기업벤처부는 지난해 11월 시흥공구상가가 사업조정을 신청하자 양측에 자율조정을 지시했다. 그러나 6차례에 걸친 교섭과 2차례의 상생안에도 타협점은 도출되지 않았다. 이에 중기벤처부 사업심의위원회는 중소기업연구원에 용역보고연구서를 의뢰했고 이날 연구서를 바탕으로 ‘사업 시행 3년 중지’라는 최종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원칙적으로는 3년 뒤 재논의가 가능하지만, 업계에선 사업의 경제적 실익과 승인 불확실성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유진기업의 신규 사업 진출은 좌초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정부대전청사 앞에서 ‘유진기업 산업용재 소매업 진출 저지’ 총궐기 대회를 개최한 뒤 결과를 기다리던 시흥공구상가 상인들은 환호했다. 김대식 시흥공구상가 사업이사는 “소비자선택권을 주장하던 유진기업 논리가 아니라 소상공인의 절박한 현실이 승리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유진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권고문을 정식으로 받은 뒤 향후 입장을 정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골목상권 분쟁 79% 증가

유진기업 사건이 소상공인 측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유사한 골목상권 분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골목상권 분쟁은 급격히 증가해 왔다. 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소상공인들이 골목상권과 관련해 신청한 조정은 총 964건에 달했다. 이는 전년(540건) 대비 79%나 증가한 규모다. 조정원 관계자는 “진보적 정권이 출범하고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강조되자, 그 동안 눈치만 보던 상인들이 ‘이번에는 해결해 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먹고 조정을 신청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골목상권 분쟁의 대부분은 돈으로 해결되는 1차원적 합의에 머무르고 있다. 실제로 현대리바트는 지난해 경기 수원시에 연면적 4,446㎡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매장을 내는 과정에서 지역상인들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상인들은 입점 반대 공동투쟁을 진행했고, 리바트가 결국 상생기금 4억원을 상인들에게 지급하고서야 분쟁은 마무리 됐다. 글로벌 가구기업 이케아 역시 지난해 고양점을 내는 과정에서 고양시가구협동조합 등이 반발하자 발전기금으로 10억원을 기탁한 뒤 겨우 문을 열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기업의 연계 사업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한 기준을 정해 골목상권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한편으론 소상공인을 위한 사회적 고용 안정성도 높여 나간다면 일자리 창출과 골목상권 보호가 모두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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