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자산처리한 개발비, 비용 반영
차바이오텍 감사서 ‘한정’ 판정
다른 바이오기업도 실적 대폭 감소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영향
“잘못하면 실형” 감사 엄격해져

공인회계사들이 달라졌다. 그 동안 일감을 준 기업엔 하나 같이 너그럽게 ‘적정’ 의견만 내왔던 회계법인들이 꼼꼼해진 감사를 통해 ‘한정’이나 ‘부적절’, ‘의견거절’ 등을 과감하게 내고 있다. 특히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주로 ‘무형자산’으로 처리됐던 임상 단계의 신약 개발비가 ‘비용’으로 반영되며 바이오 업계 전반의 ‘실적 쇼크’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개발비 인식ㆍ평가의 적정성’을 강조하고 나선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판결과 외부감사법 개정 등의 영향으로 회계업계 전반의 분위기가 보수적으로 확 바뀌었다는 게 현장 설명이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차바이오텍은 지난 22일 외부감사법인인 삼정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 감사 의견을 받았다. 차바이오텍은 지난해 5억3,700만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감사 과정에서 비용으로 처리해야 할 연구개발비 14억1,900만원을 자산으로 인식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차바이오텍은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시가총액 2조원에 달하던 기업이 ‘한정’ 의견을 받고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것은 증시에도 적잖은 충격을 줬다. 국내 상장사에 적용되는 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개발 단계의 지출은 경제적 효익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고 원가를 신뢰성 있게 측정할 수 있을 때 무형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개발에서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를 받기까지 길게는 10년 이상 소요되는 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어느 시점에서 이를 자산으로 인식할지는 회사마다 제각각이다. 인트론바이오의 경우 임상 진입 이후 발생한 지출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신라젠은 임상 3상을 통과한 이후 발생한 지출만 무형자산으로 처리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152개 제약ㆍ바이오 상장사 중 83개사(54.6%)가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
더구나 올해 금감원의 회계 중점 관리 대상이 연구개발 비중이 큰 바이오 기업에 맞춰지면서 회계법인의 외부 감사 자체가 더 깐깐해졌다. 먼저 대응에 나선 일부 바이오 기업의 실적은 대폭 쪼그라들었다. 바이로메드는 임상 3상 이후 정부 승인 가능성이 높은 개발 프로젝트만 무형자산으로 인식하기로 하고 이번 감사 과정에서 과거 재무제표를 모두 수정했다. 그 결과 2016년 말 기준 자산 총계는 2,275억원에서 1,708억원으로 줄었고, 2014~2016년 당기순이익도 9억6,600만원에서 마이너스 70억3,200만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같은 방식으로 과거 재무제표를 수정한 제넥신의 2016년 말 자산도 1,987억원에서 1,586억원으로 감소했다. 코미팜은 지난해 재무제표 작성 과정에서 자산으로 처리했던 신약 개발비 99억원을 손실로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당기순이익도 2016년 2억원에서 지난해 -52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증시 안팎에선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분식회계를 묵인한 혐의로 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이 징역형을 받으면서 회계 부정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하반기 적용되는 외부감사법 개정안에서는 회계처리기준 위반에 대한 회계사의 책임 소재가 더 커지면서 선제 대응하는 기류도 조성되고 있다. 공인회계사 김모(29)씨는 “회계 감사를 잘못하면 회계사 개인이 소송을 물론 실형까지 받을 수 있어 감리가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며 “특히 바이오 업계는 기업 규모에 비해서 연구개발 비중이 커 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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