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진정성 요구에 로드맵 제시
‘뭔가 내놔야 협상 나서겠다’ 메시지
美 ‘조건없는 비핵화’ 입장과 충돌
시간벌기 살라미 전술로 비칠 수도
트럼프, “金, 북미회담 고대한다지만
대북제재 최대 압박은 유지할 것”
25~28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단계적 조치에 따른 비핵화”를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북핵 담판을 앞두고 나름의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을 통해 “선대의 비핵화 유훈은 일관된 입장”이라고 다시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비핵화 진정성 요구에 부응하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과거 비핵화 협상에서 보여온 북한 특유의 ‘살라미 전술’(하나의 협상을 여러 협상으로 쪼개는 외교 전략)을 반복할 가능성도 동시에 내비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중국 관영 CCTV와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방중 기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난 김 위원장은 “선대 유훈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주력하는 것은 우리의 시종 일관된 입장”이라며 비핵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한미가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ㆍ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언급은 철저하게 미국을 향한 메시지로 분석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을 통해 “북중 간 대화 내용이 앞으로 있을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언급한 ‘단계별 비핵화’를 미국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미국도 무언가를 내놔야 비핵화 협상에 나서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에 도움이 될 수도 덫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봤다. 북한은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제시했지만,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협상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강경한 입장과 상충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과거 비핵화 협상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입장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의 ‘단계별 비핵화’ 전략은 비핵화 의지는 없이 시간만 벌려는 전략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현지시간)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고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밝히면서도, 당분간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은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지난 밤에 중국 시진핑으로부터 그와 김정은의 만남이 매우 잘 됐고 김이 나와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유감스럽게도 최대한의 (대북) 제재와 압박은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만남(북미 정상회담)을 기대하시라”라고도 했다.
북중 정상은 이번 회담 양국의 전통적 우호 관계 회복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정의상, 도의상 제때 시 주석에게 직접 통보해야겠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에 “북중 간 전통적 우의가 원로 지도자들에게 받은 유산”이라며 “한반도 비핵화 평화 안정 유지,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지지한다”고 화답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비공개에 부쳤던 북중 정상회담을 공식화하면서 김 위원장 환영 행사가 인민대회당에 성대히 열린 뒤 두 정상의 회담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27일 오후 3시 특별열차 편으로 베이징을 출발해 이날 오전 평양으로 귀국했다.
정부는 29일 방한하는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을 통해 김 위원장의 방중 결과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양 정치국 위원이 시 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방한한다”며 “한반도 비핵화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서도 한중 간 협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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