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령들의 정권(Regime of the Colonels)’이라 불린 그리스 군사정권은 1967년 쿠데타 이후 74년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 직후 붕괴할 때까지 그리스 현대사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쿠데타 주도자인 요르고스 파파도풀로스와 비밀경찰 및 군대의 억압과 탄압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그것에 견줄 만했다. 15세기 중엽 비잔틴 동로마제국의 패망 이후 400년 오스만제국의 식민지로 살고, 20세기 독립 후에도 터키 등의 침공과 2차 세계대전 독일 점령(1941~44년), 44년 극우 정권의 좌익 유혈 탄압에 이은 5년의 내전까지 겪은 그리스였다. 극우 민족주의 군사정권은 대학과 시민사회에 대한 전방위 사찰로 자유를 억압하며 민주주의, 진보ㆍ좌익 진영의 숨통을 틀어 막았다.
그 와중이던 1969년 3월 28일, 6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요르기오스 세페리스(Giorgos Seferis, 1900~1971)가 BBC 월드서비스 방송을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군부집권 이후 그도 작품 검열과 활동 규제를 받던 때였다. 그는 “오래 전부터 나는 내 나라의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는 결심을 품고 살았다. 하지만 그게 나의 정치적 무관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제 나는, 강렬한 의무감에서, 지금 우리의 상황을 최대한 간명하게 말하고자 한다.” 그는 그리스 민중이 지난 세계대전 때부터 지켜온 이상을 ‘절대적으로 적대하는’ 군사정권의 해악을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저 유구한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적)코러스처럼, 이 이상(異常, anomaly)이 지속될 수록 악도 그만큼 비대해질 것이다.(…) 이상은 멈춰야 한다.” 그는 “이제 나는 다시 침묵할 것이다. 기도하건대 신이여, 내게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말게 하소서”라며 글을 맺었다.
그는 터키 이즈미르 울라(Urla)에서 태어나 파리 소르본느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20년대 중반부터 약 40년간 외무관료와 외교관으로 일했다. 청년기부터 시를 써서 31년 첫 시집 ‘전환점’을 낸 그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 대한 강렬한 자부심을 품고 있었고, 동시에 국제사회의 약자인 그리스의 현실에 민감했을 것이다. 63년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그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테베의 오이디푸스가 던진 대답이 ‘인간’이었고, 그 한 마디로 괴물을 무찔렀습니다. 수많은 괴물들을 마주한 오늘의 우리도 오이디푸스가 찾은 해답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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