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에 21만명 넘어
국가가 선지급 뒤 구상권 행사
OECD 상당수 운영하고 있지만
17대 국회 재정 부담 이유로 무산
정부, 법제화 추진 여부 주목
“미혼모가 양육비를 받으려면 연락이 끊겼던 생부를 찾아내 친자 여부부터 확인해야 해요.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이뤄져 소송에서 이겨도 생부가 ‘배 째라’식으로 지급을 거부하면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죠.” (미혼모 A씨)
미혼모ㆍ부에게 정부가 양육비를 지급하고 추후 비양육자의 소득에서 양육비를 원천 징수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의 ‘양육비 대지급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에 21만7,000여명이 동의했다. 국민청원 20만명이 넘으면 청와대나 관련 정부부처가 의무적으로 답변하거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1개국 중 18개국이 양육비를 국가가 선지급한 후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노르웨이(1957년), 핀란드(1963년), 스웨덴(1964년), 덴마크(1969년), 독일(1979년) 등 유럽 국가들은 수십년 전 도입했는데, 미혼모뿐 아니라 한부모 가정 지원을 위한 제도로 도입했다. 호주나 영국, 미국 등은 양육비 징수율을 높이기 위해 여권발급 불허, 운전면허 취소, 관허사업 면허 제한 등 강력한 행정적 제재 수단을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17대 국회부터 논의됐지만 재정 부담을 이유로 실제 추진되지는 못했다. 양육비는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꾸준히 지급돼야 해 재정 부담이 크고, 추후 정부의 구상권 청구시 환수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대신 한부모들의 양육비 협의, 소송 및 추심 과정 등을 지원하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2015년 설립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이 2015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양육비 이행 의무가 확정된 건수 중 실제로 양육비를 받아주는 데 성공한 비율인 '양육비 이행률'은 32%다. 그러나 미혼모ㆍ부 신청건으로 한정하면 이행률은 18.3%로 전체 한 부모 가정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비양육자의 신원을 알고 채권까지 확보한 경우조차 5명 중 1명밖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혼모 지원단체 관계자들은 실제 양육비를 받는 미혼모ㆍ부는 더 적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미혼모들은 양육비 이행의무 확보를 위해 친자확인 인지소송 절차부터 거쳐야 하는데, 생부의 신원 확인을 위한 주민등록번호 등 기본정보를 알지 못해 아예 소송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탓이다.
전문가들은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양육비대지급제도 도입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의 최저 생계를 보장해주자는 차원에서 국가가 대신 지급해야 한다는 게 제도의 근본 취지"라며 “미혼모들이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첫 번째 장벽인 생부 인지소송 절차를 완화해 주는 방안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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