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의 시대’ 대구ㆍ경북 물류중심 기회 삼아야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의 조건을 두 가지로 꼽았다. 기름진 땅이 첫째고, 그 다음이 배와 수레와 사람과 물자가 모여드는 곳이라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큰 기업들이 많아서 일자리 걱정이 없는 곳이 제일이고, 교통이 좋은 곳이 차선일 것이다.
아쉽게도 대구는 둘 다 만족스럽지 못하다. 대기업이 모습을 감춘 지 오래고 국제화 시대의 핵심 교통수단으로 부상한 항공기와 관련해서는 공항이 협소해 관문으로 역부족이다. 그 결과 16개 광역시ㆍ도 중에서 20년 넘게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꼴찌를 기록했고, 전국 시도 중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가장 높다. 지독한 경제 슬럼프를 탈출할 그랜드플랜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구공항’ 최대의 경제 화두로
몇 년 사이 신공항이 최대의 경제 화두로 자리매김한 것도 그 절실함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나타난 튼튼한 동아줄이라는 기대감에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태는 분위기다. 기대가 큰 만큼 구성원들 사이에 외나무다리에서 맞서는 듯한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선, 통합이전론과 민항존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기부대양여로 큰 틀이 잡혔고 현실적으로 경북에 군공항만 받아들일 지역이 없다는 점에서 통합이전론의 우세가 점쳐지지만 민항존치론의 설득력도 만만찮다.
민항존치론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접근성이다. 공항이 멀어지면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다는 것이다. 공항까지 가는 시간이 김해공항을 향하는 것보다 길어질 경우 승객이 오히려 지금보다 줄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다.
통합이전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기우라고 맞선다. 공항철도를 건설하고 기존의 도로를 8~10차선으로 확충해 대구 도심에서 공항까지 이동 시간을 30분 안으로 줄이면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것이다.
공항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에서 진행 방식과 위치 선정과 함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공항의 위상에 관한 것이다. 외부에서 기대하는 새로운 공항의 위상은 지역민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높아 보인다.
“대구공항 인접지역 포함 관문 돼야”
홍석진 미국 북텍사스대 교수는 지난해 열린 세미나에서 인천공항이 수도권을 맡고 대구공항은 대구ㆍ경북은 물론 인접 지역까지 포괄하는 관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고 큰 역할이 기대된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의 기대가 충족된다면 공항이 대구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도가 아니라 지역의 새로운 심폐가 될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항이 들어서면 공항 경제권이 형성된다. 서비스업이 발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첨단 분야의 기업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 옆에 안착한 휴렛팩커드와 미국 댈러스공항 인근에 자리를 잡은 도요타가 대표적인 예다. 대구공항과 관련해서도 경북북부에서 신공항, 대구에 이르는 회랑지역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회랑의 끝에 자리 잡을 종전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도 뜨거운 화두다. 가장 신선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종전 부지 주변의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1,600만㎡의 부지에 거대한 첨단 산업 단지를 조성하자는 의견이다. 종전 부지에서 검단들까지 거대한 산업 벨트를 구성한다는 구상이다. 획기적인 발상이다.
어떤 산업을 어떤 방식으로 유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대기업을 유치할 수도 있겠지만, 핀란드처럼 IT와 첨단 산업 관련 벤처 기업들의 요람으로 만드는 방안도 괜찮아 보인다. 대구ㆍ경북의 대학과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손을 잡고 새로운 강소기업을 키워낸다면 대기업 이상의 존재감으로 지역 경제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 보는 큰 그림’ 정부 지원 필요
그러나 문제가 있다. 기부대양여 방식으로 공항 건설을 추진하자면 종전 부지에서 거둔 수익으로 공항에 투자해야 한다. 기업 유치와 산업 개발에 앞서 당장 자금을 뽑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7조원을 상회하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경제력만으로는 힘들다. 현실에 급급하지 않고 멀리 보고 큰 그림을 그리려면 중앙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
대구는 다시 기로에 섰다. 우리 지역은 섬유도시 이전에 물류의 중심지였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운 덕분에 조선 후기 3대 시장을 탄생시켰고 서상돈이라는 걸출한 상인을 배출했다. 전국적인 파급력을 가진 경제운동(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것도 풍부한 자금과 함께 경제 감각이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낙동강 수운은 철도와 고속도로에 이어 하늘길에 자리를 내줬고, 조운선과 보부상은 비행기와 바이어로 바뀌었다. 경제 성장은 당대의 가장 유용한 운송수단을 갖추는 데서 시작한다. 달구벌의 역사가 바로 이를 보여주었다. 대구는 다시 대전환 시기다. 이 기회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따라 도시의 흥망성쇠가 좌우될 것이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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