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개막했다. 다른 때보다 일찍 3월에 문을 연 프로야구는 시작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출범 37번째 시즌인 올해 KBO리그는 시간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스피드 업을 통해 경기 시간을 10분 이상 줄이는 게 목표다.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비해 20분이나 더 걸리는 지루한 경기로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 21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도입한 게 ‘자동 고의 4구’ 제도다. 수비팀 감독이 고의 4구를 신청하면 공을 던지지 않더라도 인정돼 타자는 1루로 직행하게 된다. 공 4개 던질 시간이라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는 횟수도 경기 당 3회에서 2회로 줄이고, 무제한이던 비디오 판독 시간은 5분으로 제한된다. 부러진 방망이 교체 시간 몇 초를 줄이자고 타자들은 여유 방망이 2개를 대기 타석에 준비해야 한다.
경기 시간 줄이기는 다른 종목에서도 마찬가지다. 축구 규칙을 관장하는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지난해 6월 전ㆍ후반 90분 경기를 전ㆍ후반 각 30분씩 60분으로 줄이는 파격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국제배구연맹(FIVB) 역시 지난해부터 ‘서브 8초룰’을 강화했다.
모든 스포츠가 시간 단축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LTE를 넘어 5G의 스피드를 맞고 있는 시대에 지루함을 못 견뎌 하는 팬들을 잡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야구엔 시간단축을 위한 룰을 포함해 수백 개의 규칙이 지배하고 있다. 스포츠란 선수들의 움직임으로 보여지는 것이지만 사실 그 행위들은 수 많은 규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 룰들은 선수들의 물리적 부상 위험을 최소화 하며 경기에 공정성을 부여하고, 선수나 팬들의 즐거움을 얼마나 많이 담아낼 수 있느냐에 맞춰져 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 인기가 높았던 격투 종목으로 판크라티온이란 게 있다. 기록에 따르면 5세기 전반 메사나의 레온티스코스는 상대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방법으로 승리를 얻었다. 피갈리아의 아라치온은 상대의 발을 부러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목이 졸려 죽고 말았다. 심지어 이빨로 물어뜯고 손톱으로 상대의 눈을 파내면서까지 이기려 했던 게 올림픽 경기였다.
이런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유희가 엄격한 규칙을 통해 문명화된 것이 지금의 스포츠다. 스포츠 문명화의 대표적인 사례는 권투다. 고전적인 권투는 판크라티온처럼 표준화된 규칙이 없어 길바닥의 싸움박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권투에서 다리의 사용을 전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처음 도입했다. 이후 폭력성을 줄이기 위해 쿠션 있는 글러브 사용이 도입됐고, 기회의 동등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체급제가 시작됐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거듭 세련되진 스포츠는 뜨겁지만 통제된 경쟁을 펼치는 게 주 목적이다. 정해진 룰에 따라 안전하면서 재미와 감동을 추구하는 게 스포츠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법이란 룰에 기대고 있다.
26일로 예정된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관심이 높다. 여야는 치열한 힘겨루기만 할 뿐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의 개헌안 브리핑이 3일간 순차적으로 공개된 것을 두고 야당은 ‘쇼’라고 비난하지만, 개인적으론 모처럼 ‘법 중의 법’ 헌법을 차근차근 되짚어 볼 수 있어 좋았다. 시대의 요구가 뭔지 함께 고민해보며, 헌법에 보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던 기회였다. 개헌안 발의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간다.
대통령의 표현대로 헌법은 ‘국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선거공학적 계산으로 함부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 부디 세련된 시대 정신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솔직히 작금의 국회 수준을 생각하면 과연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이성원 스포츠부장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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