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중국 최고의결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3차 전체회의는 예상대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연임제한 폐지를 골자로 한 헌법개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개헌 이후 시 주석은 “개인의 공명을 따져서는 안되며 추구해야 할 것은 인민의 평판과 역사의 앙금이 가라앉은 뒤의 진정 어린 평가”라고 말했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자마자 그 필요성과 정당성을 스스로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 개헌으로 시 주석은 3선 연임은 물론 법적으로는 종신집권까지도 가능해졌다. 중국 현대사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 반열에 올랐고,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마오쩌둥을 넘어 설 수도 있다.
이어 18일 치러진 러시아 대선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역시 네 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푸틴 대통령은 2024년까지 권좌에 않는다. 과거 러시아 혁명 이후 스탈린(29년)에 이어 최장기 집권이다.
푸틴의 네 번째 집권은 시 주석 임기제한 철폐와 더불어 한반도를 포함한 역내 질서에 상당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상 장기집권을 예고한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 모두 ‘중국몽’(中國夢)과 ‘강한 러시아’라는 강력한 민족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두 지도자의 이런 경향은 기존 미국(서방)중심 질서의 탈피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 1인 지배체제’ 강화를 기점으로 대국(大國)에서 강국(強國)으로의 전환을 공식화하는 한편 과거에 비해 더욱 적극적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40년 간 중국식 개혁ㆍ개방정책의 성공과 이를 통한 비약적 경제 발전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대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즉 시진핑 시대의 ‘중국몽’ 실현은 과거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와 달리 매우 대담하게 자국 이익을 관철하고, 중국식 비전과 목표를 바탕으로 한반도를 포함한 역내 질서 변화를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대만, 남중국해는 물론이고 때로 한반도 정책에서 미국과의 대치 수준이 높아질 거라는 얘기다.
푸틴 대통령도 더욱 강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강대국 러시아 부활을 외치며 강력한 1인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대내외에 각인시켜 주었다. 특히 크림반도 병합, 시리아 내전 격화 이후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대러 압박과 제재가 강화되자 오히려 러시아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푸틴주의’(Putinism)로 알려진 ‘스트롱 맨’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물론 중국, 러시아가 미국을 대체하는 패권적 지위를 추구할 가능성은 다소 낮아 보인다. 그러나 양국 모두 강력한 1인 지배체제가 완성되면서 이전에 비해 대내외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며 역내질서 변화로까지 이어질 것임에 틀림 없다.
중국은 3조 달러가 넘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갖고 중국 중심의 유라시아 정치ㆍ경제 질서 재편에 돌입했다. 21세기 중국판 마셜플랜이라 일컫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에 국가적 총력을 기울이는 게 대표적 예다. 러시아 역시 독자적 강대국 발전 노선의 일환으로 유라시아주의에 입각한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구축을 적극 추진 중이다.
요컨대 중화민족 부흥과 강한 러시아를 외치며 새롭게 출범한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 모두 이전보다 훨씬 자기 주도적으로 역내 질서 변화를 추진할 것이다. 특히 중ㆍ러 모두 강력한 1인 지배체제를 바탕으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유지 및 강화에 나설 전망이다. 머지않아 기존 국제질서를 규율해 온 제도와 규범을 놓고 미국(서방)과의 본격적 경쟁과 갈등이 빚어질 것임을 예상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런 정세 변화는 우리에게는 전환기적 역내 질서변화가 될 수도 있다. 균형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되,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원칙하에 다자간 역내 협의체 추진 및 새로운 대중ㆍ대러 정책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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