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역사의 발견’은 도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지하철ㆍ전철역 역사(驛舍)들을 역사(歷史)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점령한 서울에 간이역이 있다면 좀 생뚱할지 모른다. 대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고즈넉한 풍경이라서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화랑대역 구 역사(驛舍)는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었다. 2010년까지 기차가 달렸다. 원래는 역 인근 문정왕후 무덤의 이름을 딴 ‘태릉역’이었다. 하지만 역사 바로 옆에 육군사관학교가 들어서며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육사의 별칭이 화랑대다.
화랑대역은 경춘선(서울~춘천)의 한 역으로 1939년 7월 개설됐다. 현재 구 역사는 이때 지은 역사다. 80년의 세월을 살아 남았다. 역사의 외관은 언뜻 보기에 평범하다. 본채가 삿갓 모양 지붕을 머리에 인 모습이다. 대부분의 간이역은 일자형 평면 위에 십자형 박공 지붕을 올린다. 박공 지붕이란 책을 뒤집어 엎어 놓은 것처럼 생긴 지붕이다. 하지만 화랑대역은 박공 지붕이면서 십자형이 아닌 비대칭 삼각형이다. 정문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더 길게 뻗어있다. 이런 지붕을 건축 용어로 ‘이어내림지붕’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박공 지붕과는 미묘하지만 차이가 있는 셈이다.
60년대는 병력 수송 거점, 80년대는 대학생들 ‘핫플레이스’
화랑대역의 역사(歷史)는 육군사관학교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육사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는 1946년 서대문구를 떠나 현재의 태릉으로 옮겼다. 1957년 당시 육사 교장이었던 백남권 장군 제안에 따라 육사에는 ‘화랑대’라는 별칭이 생겼다. 신라 삼국통일 과정에서 활약한 청년 단체 ‘화랑(花郞)’처럼 용맹한 군인을 양성한다는 뜻에서다. 육사에서 수십여m 떨어진 태릉역도 이에 맞게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화랑대역은 1960년대 무렵부터 병력 수송의 중요 거점 역할을 했다. 충남 논산 등 후방에서 신병교육을 마친 장병들이 전방 부대에 배치되기 전 들르는 곳이 바로 화랑대역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1년에 하루 만큼은 민간인들로 붐볐다. 육사 졸업식이다. 졸업하는 생도들의 가족, 친인척들이 한 곳으로 몰리면서 인근 교통이 마비됐다. 이 때문에 육사 졸업식 날엔 특별히 용산~청량리~화랑대 구간만 운행하는 10량짜리 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화랑대역은 1970~80년대 대학생들의 단골 여행지였던 강원 춘천으로 향하기 전 서울에서 만나는 마지막 간이역이었다.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화랑대역은 승하차 연인원이 1975년 4만6,300여명에 불과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철권 통치가 끝나고 사회 전반에 자유로운 풍조가 깃들던 1980년에는 12만1,600여명으로 약 3배 늘었다. 신학기와 평일에는 춘천으로 MT를 떠나는 대학생들로 붐볐고, 주말에는 나들이 가는 행락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철도청(현재의 KORAIL)은 화랑대역을 지나가는 경춘선 서울 성북역~구리 갈매역 노선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성북역~갈매역 노선이 지나가는 공릉동, 월계동 일대에 주택가가 생기면서 소음 관련 민원이 대폭 늘어났고, 건널목 교통사고가 잇따르며 폐선 여론이 높아진 것이다. 자연스레 화랑대역을 찾는 손님도 뚝 끊겼다. 화랑대역 구 역사는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이 생긴 2000년 이후 10년을 더 버티다가 2010년 경춘선 복선화 완료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화랑대역 마지막 1인, 권재희 역장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을 하루 앞둔 2010년 12월 20일. 화랑대역 역장 권재희씨는 정복 차림으로 기차역 플랫폼에 섰다. 70년 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백톤의 쇳덩이 열차를 온몸으로 받아낸 역사에 대한 예의였다. 마지막 춘천행 열차가 철로를 달리기 시작할 때, 권씨는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기차 출발을 알리는 수신호이자, 화랑대역에 보내는 마지막 인사였다. 권씨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권씨는 화랑대역의 마지막 역장이다. 간이역(2010년)으로 격하된 화랑대역에서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사진전, 음악회 등을 개최하며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간이역의 전형적 이미지를 탈피하려 애썼다. 역사 내부에 커피 포트, 피아노, 방명록 등을 마련해 누구든 편하게 놀러 올 수 있는 친숙한 공간으로 바꿨다. 권씨는 “하루 이용객 20~30여명인 화랑대역이 간이역으로서 간직한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역장을 그만둔 지 7년이 흘렀지만, 권씨는 여전히 ‘화랑대역 지킴이’를 자처한다. 지난해 11월 옛 경춘선의 일부 구간(녹천중~육사삼거리)을 공원화한 ‘경춘선 숲길’ 개장식에 참석해 수신호에 맞춰 기차 레버를 당기는 기사 출발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권씨는 최근 케이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화랑대역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며 “그런데 요즘은 화랑대역에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 냉기가 감도는 것 같다. 인정이 오가는 곳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철도 테마파크’… ‘출사 명소’ 떠오르나
폐쇄된 화랑대역 구 역사는 현재 철도 테마공원으로 새 단장 중이다. 노원구는 서울시와 2013년부터 약 100억 원을 들여 화랑대역 구 역사 일대 4만462㎡(약 1,224평)의 부지를 철도공원으로 재개발하고 있다. 올 상반기 완전 개장이 목표다. 22일 찾은 화랑대역 철도공원에선 노원구가 세계 각국에서 공수한 노면 열차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구 역사와 철로, 승강장이 그대로 보존돼 옛 간이역의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최근 구 역사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인생샷’ 남기기 좋은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날 처음 구 역사를 찾았다는 베트남인 레티꾸인장(30)씨는 “집이 남양주라 버스 타고 매일 이곳을 지나다녔다. 예쁘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처음 왔는데, 사진 찍기에 정말 예쁜 곳 같다. 사진이 잘 나와서 좋다”고 말했다. 사진 동호회에서는 이 곳이 ‘출사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 박재범(42)씨는 “동호회 카페에 화랑대 역이 출사 장소로 올라온 걸 보고 왔다”며 “사진이 예쁘게 잘 나온다”고 말했다. 박씨는 “개발되기 전에는 폐역 느낌이 강했고, 날 것의 느낌이었다”며 “1년에 2, 3번씩,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진을 찍으러 구 역사에 꼭 온다”고 말했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남우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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