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차르’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군주는 이반 4세다. 흔히 ‘공포의 이반’으로 알려져 있지만 통치자로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사실상 모스크바 대공에 불과했던 군주의 위상을 강화하고 시베리아 근방까지 영토를 넓혀 훗날 러시아 제국의 초석을 놓았기 때문이다.
‘21세기 차르’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통치 역시 비슷한 양면성을 안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푸틴의 입’을 맡은 국영 언론은 반대파의 목소리를 철저히 무시한다. 러시아 정권이 반정부 인사를 암살한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영국 정부는 지난 4일 자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전직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독극물 중독 사건의 배후로 러시아 정부를 지목했다.
그러나 러시아 내에서 푸틴 대통령은 대체 불가능한 지도자다. 실세 총리로 재임한 4년을 포함해 그의 통치기간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영광을 서서히 되살렸다. 전임자 보리스 옐친 시절 추락한 경제를 추슬러 세계 최대 에너지 산업 국가가 됐고 정치ㆍ외교적으로도 유럽ㆍ중동ㆍ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더불어 반서방 세력의 맹주로 자리매김했다. 풍전등화에 빠졌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안정시킨 시리아 내전 파병 성과는 ‘강한 러시아’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 준다.
러시아 국민들은 18일 치러진 대선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 푸틴 대통령과 ‘애국주의 마케팅’에 높은 투표율과 지지율로 보답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가 영원할 수는 없다. ‘최초의 차르’ 이반 4세 사후 러시아도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설 때까지 한동안 혼란에 빠졌다. 푸틴 대통령의 새로운 6년 임기 최대 과제는 안정적인 ‘포스트 푸틴’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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