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하자ㆍ할많하않ㆍ엄근진…
10대간 대화 60% 이상 신조어
듣고도 이해 못하는 경우 허다
SNSㆍ개인방송 등 접촉매체 따라
개개인마다 신조어 구사력 달라
같은 세대끼리도 의사소통 장애
“오늘 인터뷰가 잘 안 돼서 슬프다, 롬곡옾눞!”
서울 송파구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주모(26)씨는 지난해 12월 초등학생의 글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신문기자 체험 현장에서 학생이 쓴 기사를 읽어보는데 ‘롬곡옾눞’이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등장했기 때문. ‘폭풍눈물’을 180도 뒤집은 단어로 슬픈 상황을 표현하는 신조어란다.
주씨가 이곳에서 10대 말을 못 알아들은 건 이뿐 아니다. 직업체험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중학생들이 계속 “존버하자(버티자는 뜻)”를 외치는데 지레짐작으로 “가수 이름이냐”고 동료에게 물었다가 망신만 당했다. 주씨는 “10대끼리 대화 60% 이상이 신조어여서 듣고도 이해를 못한다”라며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0대 아르바이트생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범람하는 신조어로 의사소통 장애를 호소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과거 “이 단어 모르면 아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신조어가 특정 세대를 구분 짓는 역할을 했지만, 이젠 같은 세대 안에서도 대화가 어려운 수준까지 온 것이다. 신조어가 주로 생성되고 유통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인터넷 개인방송, 온라인 게임을 경험했는지 여부에 따라 신조어 구사력에 차이가 난다는 게 요즘 세태다.
같은 초등학생 간에도 서로 모르는 신조어가 수두룩하다. 경기 고양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김민하(24)씨는 과도한 신조어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최근 학생들과 함께 ‘금지어 목록’을 만들다 깜짝 놀랐다. ‘려차(fuck을 한글자판으로 적은 것)’ ‘컹스(혐오스럽다)’ 등 비속어가 신조어의 주를 이뤘는데, 한 학생이 “이 단어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자 다른 학생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서다. 김씨는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유행시킨 단어가 많아 그 방송을 보지 않는 학생들은 잘 모르더라”고 전했다.
20대도 마찬가지. 직장 동료 혹은 또래친구들과의 일상 대화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직장인 한모(26)씨는 “동료들이 자꾸 대화 중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사용하는 데 매번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민망하고, 그렇다고 아는 척 넘어가자니 대화 내용을 오해하게 될까 봐 걱정”이라며 “나이 차이도 거의 나지 않는데 왜 나만 신조어를 모를까 의아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거의 접속하지 않는다는 대학원생 박재현(25)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친구가 공유한 ‘2018년 신조어 모음’ 게시물을 봤는데 ‘비담(비주얼 담당)’ ‘할많하않(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 등 모르는 단어만 있었다”라며 “나 같은 사람을 ‘문찐(문화 찐따)’이라고 한다더라”고 황당해했다.
전문가들은 “미디어 접촉 차이에 따른 사회화 결과”라고 풀이했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세대가 같은 신조어를 사용하면서 언어적 동질감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매체를 많이 접하느냐에 따라 개개인마다 언어습득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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