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가결되면 군수가 재의 요구해야”
충북 증평군의회가 스스로 만든 인권조례를 5개월 만에 폐지하겠다고 나서 논란을 빚고 있다.
증평군의회는 ‘증평군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이하 증평군 인권조례)’ 폐지를 골자로 하는 조례안을 최근 입법 예고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조례안은 다음달 9일까지 주민 의견 청취 후 군의회 기획행정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증평군 인권조례는 증평군의회가 지난해 11월 제정했다. 군의회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인원을 보장하기 위해 지자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의원 7명 만장일치로 이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렇게 스스로 만들었던 조례를 군의회가 다시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은 윤해명 기획행정위원장이 발의하고, 일부 의원들이 동조해 입법 예고됐다.
이들 의원이 인권조례 폐지에 나선 데는 보수 기독교계의 주민 청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평군의 한 교회 목사는 지난달 증평군 인권조례 폐지 청구를 했다.
이 목사는 조례 폐지 청구 이유서에서 “이 조례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한다”며 “소수의 인권보장을 위해 다수의 인권을 역차별하며 인간의 윤리 도덕을 파괴하는 독소 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조례 제2조 1항의 ‘인권이란 대한민국 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말한다’는 조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군의회가 인권조례 폐지를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도내 1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충북인권연대는 22일 성명을 내 “증평군 인권조례 어디에도 성 소수자의 인권보장이나 성적 차별 금지 내용이 없다”며 “인권조례 폐지 추진은 성적 소수자의 인권이 보장하면 동성애가 확산한다는 편협한 사고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왜곡하고 문구에 천착해 차별과 편견을 부추기는 일부 종교계의 움직임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스스로 제정한 조례를 5개월 만에 의원 발의로 폐지하려는 군의회의 행태는 더더욱 납득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북인권연대는 조례안 폐지가 군의회에서 가결될 경우 증평군수가 즉각 재의를 요구할 것도 촉구했다.
증평군의회 관계자는 “인권조례가 자칫 주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의원들이 폐지를 추진하는 것 같다”며 “폐지 여부는 주민 청취와 상임위 심사, 본회의 의결 과정에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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