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 올림픽 8강, 득점왕. 국가대표 출신 포워드 김정은(31ㆍ아산 우리은행)은 여자프로농구(WKBL) 리그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서 승승장구했다. 개인은 화려했지만 우승 트로피는 정작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2년 전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고 감정이 벅차 올라 눈물을 흘렸으나 출전 기록은 혈통을 속이고 국내 선수 대우를 받은 외국인 선수 ‘첼시 리 사태’로 삭제됐다.
김정은은 2017~18시즌을 앞두고 2006년 데뷔 때부터 몸 담았던 부천 KEB하나은행(전신 신세계)을 떠나 자유계약선수(FA) 계약으로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 3년간 무릎 부상에 시달려 ‘한 물 갔다’는 평가를 듣고 떠밀리듯 새 둥지를 찾았다. ‘우승 청부사’ 위성우(47) 우리은행 감독조차 재기를 반신반의했다는 계약이었다.
김정은은 이를 악물고 우리은행의 ‘지옥 훈련’을 견뎠다. 처음 겪는 차원이 다른 훈련에 수 차례 눈물을 흘렸고, 마음고생이 심할 때는 맏언니 임영희(38)에게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강해졌다. “여기에 와서 새 사람이 됐다”는 김정은은 프로 데뷔 12년 만에 우승 한풀이를 했다.
그는 21일 청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한은행 2017~18 여자프로농구 청주 KB스타즈와 챔피언 결정(5전3승제) 3차전에서 44-42로 쫓긴 3쿼터 후반 3점포를 터뜨리는 등 결정적인 순간 힘을 내며 팀의 75-57 승리를 이끌었다. 챔프전을 끝내고 무릎 수술을 받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무릎이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뛰겠다”고 투지를 불살랐다. 1차전에서 14점 4리바운드, 2차전에선 18점 4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활약한 김정은은 3연승으로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펑펑 울었다.
통합 6연패로 ‘우승 맛’이 익숙한 동료들은 미소를 활짝 짓고 포옹을 나눌 때 김정은 혼자 눈시울을 붉혔다. 프로 첫 우승과 수상 복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기자단 투표 결과, 84표 중 53표를 얻어 임영희(20표), 박혜진(8표), 나탈리 어천와(3표)를 제치고 챔프전 MVP 영예를 안았다. 김정은은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큰절을 올렸다. 위 감독은 “김정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다”며 “무릎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칭찬했다.
우리은행은 이번 우승으로 여자프로농구 사상 첫 통산 10번째 챔피언결정전을 제패했다. 6년 연속 통합 우승은 신한은행에 이어 통산 두 번째다. 또 위 감독은 여자농구 사령탑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6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위 감독 외에는 임달식 전 신한은행 감독이 5회 우승을 차지한 기록이 있다. 위 감독은 신한은행 코치였던 2007년 겨울리그부터 올해까지 무려 12시즌 연속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코치로 6년 연속, 우리은행으로 옮긴 뒤 감독으로 6년 연속 통합 우승을 독식하며 국내 ‘최고 명장’으로 우뚝 섰다. 청주=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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