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시위에서 경찰이 버스로 차벽을 설치해 차가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해도 교통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된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간부 우모(43)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무죄 취지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우씨는 2015년 11월 14일 박근혜 정부 노동시장 구조개혁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가 서울광장 앞 세종대로를 점거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오후 2시쯤 다른 참가자들이 차로를 점거하자 경찰은 오후 2시56분부터 차벽을 설치했고, 우씨는 차벽이 이미 설치돼 차가 다닐 수 없던 오후 3시 이후 도로를 점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우씨)이 집회에 참가할 때는 이미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고 일대 교통을 차단한 상황”이라며 “이 경우 직접 교통 방해를 유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일반교통방해죄는 도로를 부수거나 도로에 장애물을 설치해 교통을 방해하면 성립하는 죄다.
앞서 1심은 “피고인이 교통 방해를 유발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피고인이 다른 참가자와 순차적ㆍ암묵적으로 의사를 함께 하며 차로를 점거했다”고 유죄(벌금 300만원) 선고했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일반교통방해죄 성립 요건을 엄격하게 보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앞서 올 1월 대법원은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대회 참가자 권모(46)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권씨 역시 우씨와 마찬가지로 차벽이 완성된 뒤 차로를 행진했다가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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