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226명 직권면직’ 파장
태백 등 폐광지 출신이 119명
조사확대에 대량 해고까지 우려
“어려운 가정 잘 봐달라도 청탁?”
“선의의 피해자 다수” 불만 봇물
“재조사로 억울한 해고는 구제를”
지역 시민단체 등 단체행동 예고
“강원랜드 개장 이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회사와 지역사회 모두 뒤숭숭한 것은 처음입니다.”
정부가 강원랜드 부정채용 리스트에 올라 있는 직원을 직권면직 처리해 사실상 해고 절차에 들어가자 태백시, 정선군 등 폐광지역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226명 중 절반가량이 지역출신 인재여서 대량실업사태가 몰고 올 파장이 만만찮다. 지역주민들은 부정입사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역인재 추천이 부정청탁으로 둔갑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재조사를 통해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18일 강원랜드에 따르면 사실상 해고 처분인 직권면직 대상자는 226명으로 전체 직원의 6% 가량이다. 이들은 지난 2012년과 2013년 입사해 교육과정과 인턴, 계약직을 과정을 거쳐 3년전쯤 정규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태백시와 정선군 등 강원 폐광지역 출신은 119명이다. 검찰의 공소장에 명시된 이들과 함께 인사청탁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강원랜드 직원 13명도 지난달부터 업무에서 배제됐다. 주민들은 정부가 2008년 채용까지 조사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지자 대량해고 사태가 현실화하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원 정선군 고한읍 주민 김모(49)씨는 “인구가 적어 사회관계망이 좁고 큰 기업이라고는 강원랜드 하나 밖에 없는 지역 특성상 해고사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며 “나쁜 일이 겹쳐 걱정이기는 하지만 강원랜드가 새롭게 태어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해고 리스트에 가장 많은 50명이 올라와 있는 태백주민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말을 맞아 마을회관 등을 찾은 시민들은 “폐광지 전체가 부정채용의 온상인 것처럼 매도돼 안타깝다”며 다가올 파장을 걱정했다.
특히 일부 주민은 “지역사회에서 인재 채용을 배려해 달라는 취지로 부탁한 경우도 해고 리스트에 올랐다”며 정부의 직권면직 조치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김모(62)씨는 “’어려운 가정의 자녀를 잘 봐달라’는 수준의 부탁도 도매금으로 부정청탁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다수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강원랜드도 당초 산업통상자원부의 채용비리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사위원회를 열어 조치를 취할 계획이었으나, 예상보다 강도 높은 지시가 내려와 당혹스런 입장이다. 여기에 퇴출 리스트에 오른 직원들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이사회를 열어 인사규정을 변경해야 하는데, 강원랜드 노조가 “법적 판단에 따라 면직 등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설 뜻을 밝혀 사태가 장기화할 공산도 커졌다.
노조는 지난 16일 긴급 성명서를 통해 “정확한 수사를 통해 비리행위를 적발하고 법적 판단을 근거로 책임을 묻는다면 수긍하겠지만, 정부의 직권면직 결정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부정 합격자를 대상으로 채용 취소절차가 아닌 직권면직 절차를 밟을 경우 법률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조 측은 19일부터 퇴출대상자로 지목된 직원들과의 개별면담을 통해 법적 대응을 지원한다. 앞서 지난 주말 강원랜드 노조에는 퇴출대상자와 가족의 문의가 잇따랐다.
폐광지역 사회단체들은 채용비리 엄단에 환영 입장을 나타내면서도 정부가 직권 면직에 앞서 철저한 재조사에 나서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선 고한ㆍ사북ㆍ남면지역 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공추위)는 “취업비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이해한다”며 “다만 세심한 기준을 마련해 혹시 있을지 모를 피해자를 한 명이라도 구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폐단체연합회 등도 “금품을 제공하거나 부정한 청탁으로 점수가 조작된 경우에만 해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성희직(59) 진폐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정부가 폐광지역 거주자를 배려해야 하는 강원랜드에 대한 특수성을 감안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퇴출 대상자를 대상으로 재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폐광지역에서는 정부가 그동안 내려 보낸 ‘낙하산’ 인사에 대한 불만도 쏟아졌다. 전직 폐광지 사회단체장 A(60)씨는 “강원랜드 개장 이후 역대 정부마다 ‘논공행상’격으로 함량미달의 인사를 내려 보내 폐광지에 끼친 해악이 엄청났다”며 “앞서 이뤄진 고위직 낙하산 채용에 대한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선=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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