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가장 강력한 두 지도자가 ‘유럽 개혁’을 약속했지만 ‘개혁의 필요성’ 말고는 합의된 것이 없다.
지난 14일 총리에 임명돼 공식적인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6일(현지시간) EU개혁에 의욕이 넘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났다. 독일의 리더십 공백이 해결된 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메르켈 총리가 정식 취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이전 6개월 간의 회담과 내용은 똑같았다. ‘유로존 개혁’을 놓고 독ㆍ불 양국의 지향점이 틀리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도 “우리가 항상 의견이 같은 건 아니지만 많은 것을 함께 이뤄 왔다”라며 이를 숨기려 애썼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유로화가 통용되는 19개 국가 즉 ‘유로존’의 구조 개혁에서 확연한 입장 차이를 재확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에도 유로존의 더 강한 통합을 주장했다. 장래 위기에서 유로존을 보호하기 위해 회원국이 더 많은 자원과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기적으로 통합 유럽은행을 설립하고 ‘유럽 재무장관’ 한 사람이 통합예산을 편성하고 집행도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가난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 사이의 예산 장벽을 낮춰 ‘유럽 통합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내 가장 부유한 국가인 독일과 메르켈 총리는 이런 제안이 껄끄럽다. 이제 막 ‘대연정’을 출범한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 세력을 불리고 있는 독일대안당(AfD)의 ‘반EU 돌풍’에 맞서야 한다. 메르켈 총리의 집권기반인 기독민주ㆍ기독사회연합(CDUㆍCSU) 일각에서도 유로화 안정을 위한 통합은행과 통합예산에는 고개를 내젓고 있다. 지난달 7일 발표한 기민기사연합과 사회민주당(SPD) 간 연정협약에도 ‘반 EU’ 움직임을 반영해 유럽 재정통합에 신중한 내용이 포함된 바 있다.
결국 메르켈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하는 대신, 이민 제한과 유럽 국경 강화를 통해 ‘반 EU’ 운동의 연료가 되고 있는 이민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을 전달했다.
독ㆍ불 정상의 이날 만남은 영국이 떠난 유럽연합(EU)의 불확실한 미래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실제로 ‘유로존 서열 3위’ 이탈리아가 최악의 경우 ‘탈 EU’를 선택할 수도 있다. 총선이 끝났지만 정권 향방이 안개 속에 있는 이탈리아에서 유로화에 반대하거나 회의적인 정당 동맹(Lega)과 오성운동의 집권 가능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겉으로 드러난 이견에도 불구, 메르켈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권을 놓고 정면 대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러시아의 심상치 않은 위협도 두 정상이 이견을 뒤로하고 협력토록 할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EU에 대한 통상 위협과 러시아의 영국 솔즈베리 스파이 독극물 공격 사건에 일치된 모습을 보이는 게 당장 시급하기 때문이다. 한 프랑스 외교관은 “유럽이 뭉칠 필요가 있을 때는 언제나 블라디미르 푸틴이 나타났다”고 풍자하듯 논평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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