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인 A씨는 최근 경찰서 대표번호인 ‘02-112’가 찍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 속 인물은 본인을 금융감독원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A씨 이름으로 만들어진 대포통장이 범죄에 연루됐다며 “처벌을 피하려면 범죄에 연루된 피해금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서에서 온 전화라고 철석같이 믿은 A씨는 그때부터 사기범(전화 속 인물)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우선 이틀에 걸쳐 3개 금융기관 5개 지점을 방문해 정기예금과 보험을 해지했다. 거액의 돈을 만기 전 급하게 찾는 것을 의아스럽게 생각한 은행 창구직원이 자금사용 목적을 물었지만 A씨는 사기범이 시킨 대로 “친척에게 사업자금을 보내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보이스피싱일 수 있다’는 은행 창구직원의 경고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귀신에 홀린 것처럼 A씨는 사기범이 알려준 대포통장 3개 계좌로 총 9억원을 보냈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A씨의 9억원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 사례 중 최대 금액으로 기록됐다. 그 동안은 지난해 12월 한 여성이 보이스피싱에 속아 8억원을 보낸 게 최대였다. 당시 범인은 이를 가상화폐 비트코인으로 현금화해 달아났다.
정부기관을 사칭해 전화사기를 치는 보이스피싱은 오래된 고전 사기지만 좀처럼 피해가 줄지 않고 있다. 최근엔 20ㆍ30대 직장인 여성과 노인을 겨냥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화로 정부기관이라며 돈을 보내라고 요구하면 100% 보이스피싱이라고 보면 된다. 정부기관은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만약 사기 당한 걸 뒤늦게 알았다면 즉시 경찰서나 금감원(1332) 또는 해당 금융사로 신고해 해당 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수 없게 막는 ‘지급정지’ 신청을 해 더 큰 피해를 막아야 한다.
금감원은 60세 이상 고령층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위험 안내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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