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최광해(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이사 직무대행)
2014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국회의원 몇 분이 워싱턴을 방문하면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를 만나고 싶어 했다. 면담요청을 했지만 비서실에서는 연말이라 바쁘다고 확답을 주지 않았다.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독촉이 심했다. 그러던 중 총재가 이사회를 주재한다고 알려왔다. 회의가 끝나고 막 돌아서려는 그녀를 잡고 우리 국회의원들이 뵙기를 원하니 시간을 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녀는 대뜸 내 이름을 부르면서 “한국 이사가 만나자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비서실장에게 일정을 잡으라 하겠다”고 했다. 어려운 숙제가 해결되기도 했지만 그녀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2년간의 근무 기간 동안 그녀의 호의와 배려 속에서 행복하게 생활했다. 그녀는 우리 이사실에서 면담을 요청하면 대부분 선뜻 수락해주었다. IMF 총회나 G20 회의 기간 중 부총리를 비롯해서 고위 관계자들이 어렵지 않게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였다. 나는 2000년대 초반 IMF 담당 과장을 했다. 그때는 부총리가 연차총회를 참석해도 총재는커녕, 수석 부총재를 만나기도 힘들었다. 총회가 열리는 3일 동안 총재와 4명의 부총재가 189개 회원국에서 온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만나는 것이므로 국가의 위상이 약하면 IMF 고위인사의 짬을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나도 이사회 등에서 그녀를 적극 지원했다. 그녀는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는 프랑스 출신 여성 총재답게 분배와 양극화 해소, 기후변화, 여성의 사회 참여 이슈 등을 주도적으로 제기했다. 여성과 아시아ㆍ아프리카 출신 직원의 비중을 높이고 최빈국을 지원하는 기금인 PRGT(Poverty Reduction and Growth Trust)의 규모를 두 배(157억 달러→314억 달러)로 늘리는 일을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IMF는 전통적으로 시장경제를 강조해왔던 터라 기존 이사들은 미온적이었다. 특히 미국은 돈도 안내면서 불만을 노골적으로 제기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녀의 입장을 지지했고, 우리나라가 PRGT 기여금을 8억 달러에서 16억 달러로 앞장서서 늘리도록 노력했다. 기금 증액 결과, 우리나라는 5번째 상위 기여국이 되었다.
사실 대한민국은 그녀가 아니라 어떠한 총재라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 것이 엊그제 같지만 대주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IMF의 지분인 쿼타(Quota)를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180여개 회원국 중 16위이다. 2010년 대규모 증자를 단행하면서 지분 순위가 두 계단(18위→16위) 올라섰고 같은 그룹의 호주를 앞서게 되었다. 이사국은 늘 호주의 차지였지만, 호주와 2년씩 교대로 이사 자리를 맡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런 이유 이외에도 우리나라에 대해서 각별한 호의를 갖고 있다. 그녀가 처음 총재로 선출된 2011년 선거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그녀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IMF 총재는 유럽국가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미국과 양해가 되어있기에 당시 유럽의 유일한 대표인 그녀가 총재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럽이 미국과 일본을 합하면 지분율이 과반인 50%가 넘기 때문이다. 실제 IMF가 1945년 출범한 이래 10명의 총재가 있었지만 모두 유럽 사람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를 쥐락펴락 했던 깡드쉬 총재도 프랑스인이었다.
이러한 묵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지지를 표명한 것은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 2010년 지분을 증액하면서 개도국의 몫을 절반에 가깝게 높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개도국에서도 총재를 한 번 해보아야 되지 않냐는 움직임이 있었고, 실제로 멕시코의 아구스틴 카르스텐스(현 국제결제은행 총재)가 입후보해 꽤 강한 지지세를 모으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G20 의장국이고 개도국 그룹의 선두주자인 우리나라의 지지선언은 그녀로서는 천군만마와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보은으로 아시아태평양국의 국장을 한국인으로 선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IMF에서 실무를 총괄하는 국장자리는 모두 17개이다. 국장으로 선임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경력이 있어야 하지만 출신 국가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그녀가 금융국장으로 선임했던 호세 비날이 미국 명문대 경제학 박사기도 하지만 스페인 재무장관 출신이라는 것이 좋은 예다. 아태국장 자리는 과거 우리가 IMF 구제 금융을 받을 때 깡드쉬 총재와 함께 염라대왕처럼 보였던 나이스 국장이 맡았던 바로 그 자리이다. 그녀가 아태국장을 한국인으로 선임한 것은 전례도 없었고 파격적이었다. 한국이 그녀에게 보낸 절대적 지지 때문에 그녀가 과감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 IMF 내에서의 관측이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 2016년 연임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우리나라는 그녀를 지지했고, 그녀는 이를 고마워했다. 지난 9월 11일 방한하여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를 만난 것은 이런 감사의 표시도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21세기는 아시아가 중심이 될 것이고 그 중에서도 한국은 잠재력 있고 위기에 강한 나라라며 우리나라에 대한 낙관과 애정을 표시했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계속 뻗어나가고 국제 사회에서의 역할도 커지면서 우리는 그녀와 함께 그녀의 예언을 실현해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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