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의결권전문위에 의결권 행사 권한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국내 상장사는 270여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이런 기업의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때 앞으로는 공단 내부보다 민간의 역할이 더 커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16일 올해 첫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에 ‘안건부의 요구권’을 부여하는 의결권행사 지침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전문위 소속 위원 3명 이상이 요구하는 이사 선임이나 합병 등 주요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권한은 전문위로 넘어 온다. 지금까지 전문위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요청하는 안건에만 수동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었다. 민간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전문위 위원은 사용자와 근로자, 국민연금 지역가입자(공인회계사회ㆍ농협), 정부가 각각 2명씩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명을 추천한다.
이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전문위에 안건을 부의하지 않고 기금운용본부가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외압 논란이 제기돼 온데 따른 조치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기존에 공단이 갖고 있던 안건상정 권한을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들도 공유함으로써 의결권 행사 결정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한이 커지는 만큼 전문위 위원들은 앞으로 유가증권 보유ㆍ매매 신고를 해야 하고 금융거래 정보제공 동의서도 제출해야 하는 등 강화된 규제를 받는다.
국민연금의 이사 견제 기능도 강화된다. 기금운용위원회는 기업가치 훼손이나 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손을 놓고 있던 이사가 재선임되지 않도록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질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2014년 현대차가 감정가인 3조원보다 훨씬 비싼 10조원이 넘는 돈을 주고 한국전력 부지를 사들인 것과 같은 행위에 침묵한 이사들은 재선임을 반대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정 지침을 두고 전문위 도입 취지에 보다 적합하게 제도가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정부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를 구성해 놓고 골치 아픈 결정을 피하거나 정치적 압력을 피하려는 의도로 활용해온 게 사실”이라며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문제를 계기로 전문위의 역할과 권한을 보다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정부가 전문위 구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현행 규정이 유지된 점을 들어 전문위가 실질적인 독립기구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시각도 있다.
재계에선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운용자금이 6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 나설 경우 기업 경영의 자율권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지난해 11월 KB금융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에 찬성한 것은 지난 정부에선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로, 국민연금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 것”이라며 “수백개 기업의 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과연 개별 기업의 사정을 세심하게 살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okilbo.com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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