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K(여)씨는 외국인 바이어를 접대하는 중요한 자리라는 얘기를 듣고 회식에 갔다. 속옷 입은 여성들이 서빙 하는 ‘섹시바’였다. 스트립 쇼도 이어졌다. 수치심을 느낀 K씨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한 달 뒤 퇴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K씨에 대한 성희롱 손해배상과 함께 전 직원 예방교육을 권고했다. 서구에선 회사가 스트립 바에서 행사를 열 경우 남성우월적 문화를 장려한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정 젠더가 불편해하는 곳에서 회사 행사를 하거나 회사 비용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공개 선언한 기업도 있다.
▦ 미투 열풍이 불면서 노래방 회식이 사라지고 야유회나 워크숍이 줄었단다. 일부 남성들 사이에선 여직원과 회식을 따로 하는 등 ‘펜스 룰’을 대처법으로 거론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SNS에선 ‘한국판 펜스 룰’이라는 글도 확산 중이다. ‘여자와는 가급적 대화를 하지 않는다. 여자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악수하지 않는다. 회식 때 여자와 테이블을 분리해서 앉고 노래방은 절대 동반하지 않는다. 여자가 반갑다고 먼저 껴안더라도 열중쉬어 자세를 취한다. 여자가 먼저 사귀자고 해도 문서로 받고 허락한다.’ 지질하다.
▦ 여성 임원 비중이 높은 회사의 수익성과 업무 효율성은 그렇지 않은 회사에 비해 월등히 높다(맥킨지 조사 결과).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우리 현실에서, 여성 인력의 활용은 국가적 과제다. 그럼에도 최근 1년간 30대 그룹의 여성 임원 승진자 비율은 3.3%에 그쳤다. 여성 중위소득은 남성의 60% 수준. 역대 최다라는 20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은 17%로 OECD 회원국 평균(28.5%)에 한참 못 미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식이나 출장 등에서 배제된다면 한국여성의 처지는 더욱 열악해질 것이다.
▦ 펜스 룰은 기독교도인 펜스 미 부통령이 결혼서약을 지키려는 나름의 방법이다. 사생활 관리 차원에서 부인 아닌 다른 여성과 식사하지 않겠다는 걸 나무랄 이유는 없다. 하지만 펜스 룰을 공적 관계로 끌어들이는 건 여성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성차별이나 다름 없다. 직장생활에선 상사 멘토링이나 회식 등 비공식적 관계도 중요하다.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기회가 여성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한국은 남성중심 사회다. 남성이 변해야 한다. 남성의 지지와 연대가 성차별의 공고한 벽을 깨뜨릴 것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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