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분야 70%서 채용비리 적발
불신 커지며 공기업에 요청 봇물
#점수 낮은 전형에 자원 쏠림 우려
기재부도 “공개 지시, 자율권 침해”
오승환(30ㆍ가명)씨는 지난 1월 시험을 봤던 경북의 한 공기업에 자신의 점수와 등수 공개를 요청했다. 지난해 공기업 채용비리가 대거 적발된 후 자신도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최근 점수를 통보받았다는 오씨는 13일 “유명대학 출신이 아니라서 학벌로 밀린 게 아닐까 늘 걱정했는데 점수를 확인한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상반기 공채를 앞두고 공기업 공채에 지원했던 취업준비생들의 점수 공개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공공분야 채용 특별점검 결과 1,355개 기관 및 단체 중 946곳(70%)에서 비리가 적발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취업 커뮤니티에는 정보공개청구 방법 및 후기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지난달엔 공기업 취업전문가 및 취준생 10여명이 모여 ‘공기업 채용 전형별 점수 공개를 의무화하라’는 민원을 정부에 제기했다. 개인점수는 물론 전형별 합격점과 경쟁률, 등수를 공개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민원을 제기한 취업컨설턴트 맥(27ㆍ필명)씨는 “점수를 공개하면 투명성도 높아지고 취준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약 1,000명이 서명했다.
실제 전형별 점수를 공개하고 있는 곳도 있다. 한국남동발전은 지난해부터 전형별 합격선과 경쟁률 등을 공개하고 있다. 남동발전 관계자는 “응시자들이 평가결과를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조치”라며 “개인정보 문제가 없도록 공채가 모두 끝난 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내정자 점수 올리는 비리
선발기준 공개 강화가 더 효과적
그러나 점수 공개에는 현실적 한계도 많다. 울산의 한 공기업 관계자는 “지역권역을 나눠서 채용 중인데 합격선을 공개할 경우 점수가 낮은 곳에 지원자가 몰리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전형별 합격점수가 특정 개인의 인사정보에 해당될 수 있어 공개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 또한 “기관마다 시험점수 활용방식이 달라 일괄적으로 공개를 지시하면 자율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점수정보가 공개돼도 실제 채용비리 근절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견해도 있다. 내정자의 점수를 합격선에 맞춰 변경하는 등 사후조작에 의한 채용비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강순희 경기대 직업학과 교수는 “비리에 자주 연루됐던 면접전형은 필기처럼 점수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사전예방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다는 공기업의 채용정보 공개수준이 낮았던 것이 비리의 단초가 된 만큼 공개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공고에 선발기준을 명시하지 않거나 전형 중간에 직무분야를 추가해도 제재가 없었다. 김재환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현행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에는 정보공개에 대한 실무규정이 없어 기관별 운용이 천차만별”이라며 “경쟁률이나 합격선을 비롯, 채용과정에서 필수로 공개해야 할 정보가 무엇인지 법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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