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얘기 나오면 대화 어려워
예전엔 지뢰 하나씩 없앴지만
지뢰밭 폭파시키는 것도 방법
비핵화까지 시간 단축될 것
트럼프 임기 내 실현이 이상적
북한 핵 카드 고집 달래기가 관건
핵 인정 따가운 시선도 이겨내야”
김준형(55) 한동대 교수는 13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한 ‘특별 메시지’와 관련해 “추정컨대 북미 수교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를 교환하자는 제안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다.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정상국가’로 도약할 기회를 준다면 핵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통 큰 거래’를 제의했으리라는 게 김 교수의 추측이다. 그는 메시지가 ‘포괄적’이라는 정부 관계자 표현을 근거로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최종 상태’(End State)를 합의하자는 뜻 아니었겠냐”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전문위원을 거친 김 교수는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_북미 정상회담이 5월에 열린다. 두 나라 정상은 만난 적이 없다. 전격 성사된 배경이 뭘까.
“북한이 신년사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한국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 등으로 보여준 대북 화해 메시지의 진정성에 화답한 것 같다. 미국 생각대로 강력한 대북 제재와 군사 옵션에 대한 공포감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_왜 하필 지금인가.
“가장 협상력이 큰 시기라 판단한 것이다. 과거에는 ‘(핵실험을) 중단하냐 마냐’로만 협상해야 했다면, ‘핵무력 완성’ 선언 뒤인 지금은 이미 만들어놓은 과거 핵, 만들고 있는 현재 핵, 앞으로 만들 미래 핵 등 다양한 카드가 생겼다. 마땅한 카드가 없어 늘 쫓기거나 궁지에 몰렸던 예전과 달리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_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며 ‘향후 어떤 핵ㆍ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제일 만만한 카드를 내준 거다. 미래 핵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미국이 원하는 모라토리엄, 즉 유예 입장을 밝힌 건데, 이미 보유한 핵으로 대북 억지를 수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방증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로 거래를 시작하되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기 전까지 이미 보유 중인 핵을 카드로 활용할 것이다.”
_북미가 대화 테이블에 앉았다고 치자. 출구는 어디인가.
“이미 완성된 핵은 어떻게 검증할 것이냐가 문제다. 여기서부터는 북미간 신뢰 문제다. 샅샅이 뒤질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검증 얘기가 나오는 순간 대화 진전은 어려워질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다. 이미 실패한 방법을 쓰지는 않을 것 같다. 청와대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등 하나 주고 하나 받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검증’ 단계를 건너뛰고 ‘폐기’에 합의하는 ‘빅딜’이 성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를 해주는 대가는 북미 수교일 가능성이 크다.”
_북한이 미국에 보냈다는 비공개 특별 메시지에 그런 내용이 담겼을까.
“정부는 이 메시지가 ‘포괄적인 내용’이라고 했다. 포괄적이라는 말을 굳이 쓴 건 ‘최종 상태’(End State)를 얘기한 게 아닐까 싶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끝까지 바로 가자는 것이다. 실패한 역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나. 북한 억류 미국인 3인 석방 등도 후보로 거론되는데, 이건 부가적 성격을 가진, 일종의 보너스로 봐야 할 것 같다.”
_최종 상태부터 합의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나.
“(비핵화까지 걸리는) 시간이 확실히 짧아질 것이다. 지뢰밭을 없앨 때 지뢰를 하나씩 떠내는 게 예전 방식이었다. 하지만 한 번에 폭파해버리는 것도 지뢰밭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_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보다 먼저 열린다. 어떤 게 논의될까.
“문재인 대통령의 단계론이 작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작동할 거다. ‘한미입구론→ 남북경유론→ 북미출구론’이다. 교두보 성격인 남북회담에서는 북한 비핵화 관련 구체적 조치와 북미 수교 여건 등이 논의될 것 같다. 물론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 남북 문제 등도 포함된다.”
_회담이 열리기까지 정부는 뭘 해야 하나.
“북한에게 줄 카드를 연구해야 한다. 북한을 대화에서 탈선시키려는 시도들이 계속 있을 거다. 북한에게만 굴복을 요구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우리가 중재를 잘 해야 한다. 중ㆍ러ㆍ일에 특사를 보낸 것도 주변국 배려이면서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북ㆍ미와의 대화 내용을 주변국과 공유해 미국이 혹 다른 길로 새지 않도록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다. 북한 체제 보장, 경제 지원 논의도 할 것 같다. 6자회담 얘기도 나오는데, 과거에는 6자회담이 (비핵화로 향하는) 수단과 과정으로서의 ‘추진체’였다면 앞으로는 이미 합의를 이룬 내용을 보증하는 ‘추인체’가 될 것 같다.”
_이상적 시나리오는 뭘까. 악재는 없을까.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내에 실현하는 것이다. 북한은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핵 카드를 쥐고 있으려 할 텐데, 이 문제를 푸는 게 관건이다. 이 시나리오를 따랐을 때 ‘북한의 핵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냐’는 여론도 이겨내야 한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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