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대중적 인기 높지만
한국은 주로 화물용 1톤 강세
현대 포터ㆍ기아 봉고 많이 팔려
‘또다른 SUV’ 인식 입지 넓혀가
올해 1월 출시 렉스턴 스포츠는
물량 모자라 한달 이상 기다려야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너히)는 흙먼지로 뒤덮인 소형트럭을 몰고 드론을 쫓아 옥수수밭을 가로 지른다. 비포장 도로나 다름 없는 옥수수밭을 거침 없이 달리는 이 트럭은 닷지 램3500이라는 픽업트럭이다.
덮개 없는 짐칸이 달려있어 사람 타는 공간과 짐 싣는 공간이 분리돼 있는 게 특징인 픽업트럭은 미국을 상징하는 자동차다. 힘이 세고 튼튼해 장거리나 오프로드에 적합하다.
현재 미국에서 팔리는 자동차 7대 중 1대가 픽업트럭이다. 미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 뉴스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팔린 차량은 2016년 1,755만대보다 약 1.8% 감소한 1,724만대다. 반면 포드 F시리즈, 제너럴모터스(GM) 실버라도, 피아트크라이슬러(FCA) 램1500 등 픽업트럭 판매량은 같은 기간 4.8% 증가했다. 모두 280만대가 팔려 전체 자동차시장의 15%를 차지했다.
픽업트럭은 지난해 한국시장에서도 19만대가 넘게 팔렸다. 지난해 각각 10만대와 6만대가 팔려 국내 자동차 판매량 2위와 9위에 오른 현대차 포터2와 기아차 봉고3가 픽업트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좁은 의미의 픽업트럭은 쌍용차에서 나오는 스포츠 시리즈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지난해 3세대 코란도 스포츠가 3만대 가량 팔렸다.
올해 1월 출시된 렉스턴 스포츠는 픽업트럭 대중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난달 말까지 5,212대가 팔린 렉스턴 스포츠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달 초 기준 누적 계약대수가 1만5,000대를 넘었으나 월 생산량이 2,500대 수준이라 주문한 뒤 차를 받기까지 한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
쌍용차는 2002년 9월 ‘SUT(스포츠 다목적 트럭)’라는 타이틀을 달고 1세대 무쏘 스포츠를 선보였다. 기존 무쏘에 400㎏까지 짐을 실을 수 있는 적재함을 단 이 차는 2015년 1월까지 7만4,969대가 팔렸다. 이어 2006년 4월 액티언 스포츠가 출시됐다. 이 때까지 스포츠 시리즈는 상용트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1톤 트럭에 비해 낮은 가격 경쟁력에 발목을 잡혀 판매량이 떨어진 이유다.
결국 쌍용차는 2011년 12월까지 7만617대가 팔린 2세대 액티언 스포츠를 단종시키고 2012년 1월 ‘LUV(레저 다목적 차량)’이라는 타이틀로 3세대 코란도 스포츠를 내놨다. 지난해 12월까지 14만7,055대가 팔린 코란도 스포츠에 이어 올 1월 출시한 렉스턴 스포츠는 아예 ‘오픈형 SUV’로 명명됐다.
쌍용차 관계자는 “1세대와 2세대까지는 ‘픽업=화물차’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3세대부터 ‘픽업=또 다른 SUV’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판매량이 늘었다”고 했다.
픽업트럭은 국내 시장에서 장단점이 뚜렷하다. 상용차로 취급 받아 2,200㏄ 기준 자동차세가 2만8,500원에 불과하다. 등록세가 없고 부가세도 환급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매년 비용을 들여 자동차검사를 받아야 하고 초기 보험료도 비싸다. 차체가 커 도로나 주차공간이 좁고 지하나 기계식 주차장이 많은 우리나라 환경에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승차감과 연비도 떨어진다. 일부 차종은 연비가 시내 기준 1ℓ당 1~3㎞에 불과하다. ‘픽업트럭의 나라’ 미국은 기름값이 갤런(약 3.785ℓ)당 2.5~3달러 수준이다. 1ℓ로 환산하면 710~850원 정도다. 한국은 1,500~2,000원대로 2, 3배 비싸다.
2000년대 들어 미국 완성차 업체에서 픽업트럭을 소규모로 들여온 적은 있으나 현재 정식 수입되는 픽업트럭은 없다. 쌍용차를 제외한 국내 완성차 업체 픽업트럭 출시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내수시장에서 입지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어 진입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픽업트럭은 세단이나 SUV와는 구입 목적과 특징이 다르고 (차종) 이동이 쉽지 않다”면서도 “승용차보다 저렴한 세금 때문에, 혹은 레저나 업무용으로 쓰기 위해 소비자가 선택하는 틈새시장이자 독특한 시장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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