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순화된 호칭 사용
미국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북한의 장고가 계속되고 있다. 합의 사실이 발표된 지 닷새째인 13일까지 관영 매체 보도 등 공식 반응이 없다. 다만 ‘미치광이’ 등 욕설로 매도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미(美) 집권자’라 부르는 등 비난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미국이 쏘아 올린 무역전쟁의 신호탄’ 제하 정세 해설 기사에서 “최근 미 집권자가 자국이 수입하고 있는 철강재에 25%, 알루미늄 제품에는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표했다”며 “만일 이것이 그대로 실행되는 경우 미국을 시장으로 삼고 있는 서방국가들은 물론 세계의 많은 나라 철강재 및 알루미늄 제품 생산업체들이 막심한 피해를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비난하는 내용은 여전하지만 호칭이 누그러졌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미 집권자라는 중립적 호칭을 썼다. 최근까지 북한은 ‘트럼프 패거리’나 ‘늙다리 미치광이’, ‘미친개’ 등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해 왔다. 5월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호칭은 북한 태도를 가늠하는 잣대 중 하나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지난해까지 ‘남조선 집권자’라는 호칭을 붙였다. 제대로 된 직함으로 부르지 않은 것이다. 올 초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공식화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뒤에야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썼다.
다만 비난은 지속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제국주의자들의 인권 소동을 짓부숴버려야 한다’ 제하 논설에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논의되고 있는 데 대해 “신성한 인권이 일부 세력들의 불순한 목적 실현에 악용되고 있다”며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자들이 그 장본인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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