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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봄의 전령사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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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봄의 전령사 매화

입력
2018.03.13 11:1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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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피기 시작했으니 어느새 봄이다. 봄에 꽃이 피는 순서를 ‘춘서(春序)’라고 하는데 ‘매화는 복숭아 꽃과 봄날을 다투지 않는다’는 말처럼 가장 먼저 핀다.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부터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해 3월 말이면 중부지방에까지 꽃 소식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다.

한자 문화권에서 매화는 추운 겨울에 홀로 피어 봄이 올 때까지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격조 높은 꽃으로 사랑 받았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매천집(梅泉集)’에서 ‘부염천회간(不厭千回看)’, 즉 ‘천 번을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다’고 했다.

유교에서는 겨울에 모진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매화 감상법까지 따로 두었을 정도였다. 선비의 사랑방 앞에는 매화 화단이 배치되고, 뒷마당에는 대나무와 소나무를 심었다. 이 셋을 ‘세한삼우(歲寒三友)’, 즉 선비의 겨울 친구로 여겼다.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에 따르면 한시(漢詩)에 나오는 꽃 가운데 매화는 727회로 가장 많이 등장했다. 그림이나 도자기에는 물론이고, 나전칠기와 민화, 비녀에도 단골 소재가 되었다. 특히 달빛 아래 보는 매화가 일품이라는 이유로 많은 ‘월매도(月梅圖)’가 남아있다. 강희안(姜希顔)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화목구품(花木九品)’에서 매화를 소나무 대나무 연꽃 국화와 함께 1품으로 분류했다.

매화는 별명이 많다. 봄이 온 것을 제일 먼저 알린다고 ‘춘고초(春告草)’, 눈 속에서 핀다고 ‘설중매(雪中梅)’, 고운 자태와 맑은 향기를 높이 사서 ‘옥매(玉梅)’, 겨울에 핀다고 ‘동매(冬梅)’ 등으로 불렸다. 봄에 피는 매화인 고우(古友), 섣달에 피는 매화인 납월매(臘月梅) 등의 이름도 있다.

매화는 많은 씨를 퍼뜨린다고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어린 시절부터 사이 좋게 지내낸 연인이나 부부를 뜻하는 ‘청매죽마(靑梅竹馬)’라는 말처럼 변함없는 사랑의 상징이기도 했다. 잎사귀로 정월 초에 한 해 운수를 점쳤고, 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들고 열매가 많이 열리는 해는 논농사가 잘된다거나 꽃이 땅을 향해 피면 비가 많이 온다는 속신(俗信)도 있었다. 어린 가지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 하여 제사를 지낼 때 썼고, 가지로 지팡이를 만들어 악귀를 쫓는 데도 썼다.

열매인 매실은 워낙 쓰임새가 많다. 지금도 관상수와 유실수로서의 가치가 높다. 열매로는 장아찌 발효농축액 술 등을 만들어 먹는다. 매실은 칼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돕기 때문에 갱년기 여성을 비롯한 골다공증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껍질을 벗기고 씨를 발라내 짚불 연기에 말린 오매(烏梅)를 주로 쓴다. 덜 익은 매실의 씨는 버리고 과육만 갈아서 달여 고약처럼 만든 매실고(梅實膏)는 소화불량 구토 이질 설사는 물론이고 가래를 삭이거나 술독을 푸는 데 썼다. 하룻밤 소금에 절여 두었다가 햇볕에 말린 백매(白梅)는 구취(口臭)와 가래를 막는 데, 증기로 찌고 말린 금매(金梅)는 술 담그는 데 쓴다. 다만 매실 씨에는 ‘아미그달린’이란 맹독성 물질이 들어있어 주의를 요한다.

송(宋) 나라 시인 소동파는 “봄은 천금(千金)과 같다”고 했다. 그 봄날이 다가오는 지금 매화의 고운 자태와 그윽한 향기에 취해 잠시나마 심신을 달래보자.

정구영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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