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컬링팀 이끄는 서순석
고교 졸업 후 생계전선 나왔지만
뺑소니 교통사고 당해 척수 장애
취업 안돼 좌절할 때 컬링 만나
캐나다 꺾었지만 독일에 분패 4승1패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연승 행진이 4경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스킵 서순석(47), 리드 방민자(56ㆍ여), 세컨드 차재관(46), 서드 정승원(60)과 이동하(45)로 구성된 한국은 12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예선 4차전에서 캐나다를 7-5로 눌렀지만, 저녁에 벌어진 독일과의 예선 5차전에서 3-4로 아쉽게 패했다. 비록 독일에게 졌지만 5경기에서 4승 1패를 거둔 한국은 4강 진출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회에서는 12개국이 풀 리그를 펼쳐 4위까지 준결승에 오른다.
뛰어난 실력을 지녔던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대표팀의 스킵 김은정(28)은 ‘안경선배’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휠체어 컬링 팀 스킵 서순석도 전 세계가 인정하는 전략가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가 꼽은 전세계 휠체어 컬링에서 주목할 5명 중 1명이다. 평소 온화하고 배려가 넘치지만 빙판에 서면 냉철한 전략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킨다.
서순석은 어린 시절 육상, 줄넘기 등 운동에 만능이었다. 서순석과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한 살 터울의 여동생 서현주씨 기억에 릴레이 계주의 마지막 주자는 늘 오빠였다. 서울 오산중학교에서 투수로 활약하던 서순석은 고등학교 때 부모의 이혼으로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그가 어머니와 여동생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동생 서씨는 “그 때부터 오빠는 나에게 곧 아빠였다”고 고마워했다. 1993년 오토바이로 출근을 하던 서순석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척수 장애를 입었다. 그는 사고를 당한 뒤에도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걸 미안해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앉아서 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각종 자격증을 땄지만 취업의 벽은 높아 면접에서 늘 좌절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2009년 친구가 휠체어 컬링을 권유했고 10년 여 만에 세계가 주목하는 스킵으로 우뚝 섰다.
2014년 소치 패럴림픽에서 9위를 한 뒤 서순석은 평창만 보며 4년 간 절치부심했다. 휠체어를 타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장을 5km씩 달렸다. 동생 서씨는 “오빠 집에 가면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컬링 영상을 연구하는 오빠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순석이 이끄는 한국은 지난 1월 핀란드 국제 오픈 은메달에 이어 지난 2월 스코틀랜드 브리티시컵에서 금메달을 따며 평창에서 메달 전망을 밝혔다.
서순석은 팀을 하나로 묶는 정신적 지주다. 고등학교 때부터 동고동락한 여자 컬링의 ‘팀 킴’과 달리 휠체어 컬링 팀은 각 포지션에서 가장 잘 하는 선수를 모아 선발했다. 한국 선수들은 5명의 성(姓)이 달라 ‘오성(五姓) 어벤져스’로 불리는데 또 다른 의미에서 ‘드림 팀’인 셈이다. 하지만 선수 각자가 자존심 강하고 철학도 달라 처음에 의견 다툼도 있었다. 서순석은 “싸울 때는 싸우고 풀 때 풀었다”고 웃은 뒤 “패럴림픽을 앞두고는 팀을 위해서만 집중하고, 속상한 일은 지우개로 싹싹 지워 모두 백지가 되기로 굳게 약속했다”고 말했다.
서순석은 스킵이지만 마지막이 아닌 두 번째 순서로 샷을 던진다. 대신 라스트 샷은 서순석과 동갑 친구인 차재관(45)이 맡고 있다. 서순석은 “스킵이 늘 라스트 샷을 하라는 법은 없다”고 개의치 않아 했다. 서순석과 차재관은 캐나다전 마지막 8엔드에서 상대가 무섭게 추격해 올 때 환상적인 더블 테이크아웃(상대 스톤 두 개를 한 번에 쳐내는 일)을 한 번씩 성공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서순석은 “여자 팀이 평창올림픽에서 아쉽게 은메달을 땄는데 저 자리를 우리 주려고 남겨놓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믿고 금메달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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