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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정적(靜寂)] 포부(抱負)

입력
2018.03.12 15:1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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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욕망(欲望)을 추구하거나 포부(抱負)를 수련한다. 욕망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 나를 지배하는 괴물이다. 천체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안다. ‘욕망’이란 영어 ‘디자이어(desire)’는 ‘천체’를 의미하는 라틴어 ‘시두스(sidus)’와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뜻하는 전치사 ‘데(de)’의 합성어다.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숭고한 길을 모르고, 엉뚱하게 주변 사람들과 경쟁한다. 그(녀)는 제한된 돈, 명예 그리고 권력을 차지하려고 애쓰고 성적 만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포부를 수련하는 사람은 자신의 길을 안다. 그는 자신과 경쟁한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딛고 일어서,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진실, 착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실천하려고 매일 자신을 부추긴다. 욕망의 소용돌이에 말린 사람은 타인이 만든 규칙을 자신의 삶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착각한다. 포부를 실천하는 사람은 매일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다. 포부는 그런 사람에게 날개다. 마치 새의 날개처럼, 포부를 품은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눈높이에서 보지 않고 저 높이 떠오른 독수리의 눈으로 응시한다.

포부를 품은 사람은 세류(世流)에 빠져 욕망의 화신이 된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는 자신을 잘 보듬지 못하고 숭고하게 대접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통탄하고 새롭고 숭고한 자신을 찾아 나선다. 그런 행위가 ‘회개’다. 욕망이 나를 지배하면 나는 포부를 품을 수 없다. 동물적 삶이 달콤하고 만족스러우면, 나는 포부를 지닐 수 없다. 그러나 나의 달콤함이 운명의 여신의 도움으로 쓰라림이 되면, 나는 역설적으로 운이 좋다. 나는 슬픔 가운데서 나를 위한 숭고한 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동물적 욕망이 제거되면,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지탱해 온 문법인 정의, 사랑, 평화, 배려가 중요해진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불사조 피닉스처럼, 회개라는 재에서 욕망을 제거하고 부활한 사람은, 자신이 새로 장착한 강력한 날개로 하늘 끝까지 날아오를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물거나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끊임 없는 날갯짓으로 솟아올라, 자신과 공동체를 위한 최선을 모색한다.

포부의 쌍둥이가 있다. 바로 영감이다. ‘포부’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어스피레이션(aspiration)’과 ‘영감’에 해당하는 영어 ‘인스퍼레이션(inspiration)’엔 모두 ‘신적 숨을 불어넣다’란 의미인 라틴어 ‘스피라레(spirare)’가 들어가 있다. ‘어스피레이션’은 인간이면서도, 신적 경지에 도달하려는 노력이며, ‘인스퍼레이션’은 신적 경지에 들어가는 행위다. 포부를 기꺼이 짊어진 사람은 땅에 살면서도 하늘로 가는 길을 매일 보는 사람이다. 포부는 마치 황홀경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 경지로 들어가면, 모든 부질없는 것, 금방 사라질 것,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절로 스르르 사라진다. 포부가 나의 생각을 장악하면, 어떤 불순물도 내게 침입할 수 없다. 순수와 불순이 동일한 시간과 장소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포부를 가져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스스로 경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옳은 것을 상기하고 그것을 갈구하고, 정결한 삶을 상상하고 실천하기를 연습하는 것이 포부다. 포부로 가득 차 그것을 실천하는 삶이 지혜다. 이것이 자신에게 감동적이며 공동체를 위한 최선이다. 이것이 신적인 삶의 시작이다. 정결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매일매일 자신의 포부를 확인하고 실천한다.

내가 내 삶에서 어떤 성공,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기 전에, 나는 고요와 평정을 수련한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그 떠올리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이 수련이 어렵기도하고 쉽기도 하다. 생각을 가만히 자신의 포부에 조준하면 된다. 자신을 위한 최선의 생각은 내 일상생활, 말과 행동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날 것이다. 내가 될 것,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있다. 신은 그것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다. 바로 ‘지금’이다. 꾸물대기라는 게으름은 ‘지금’의 적이다. 그것은 나를 ‘나에게 창피한 과거의 습관’로 잡아당기는 악마의 사슬이다. 나는 오늘이고 매일이고 지금이다. 나의 포부는 지금 완성된다.

포부(抱負)는 뱃속의 아이(巳ㆍ사)를 두 손(扌ㆍ수)으로 정성스럽게 감싸는(勹ㆍ포) 행위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재화(貝ㆍ패)로 여겨 기꺼이 지고 감내하는 사람(人)의 결심이자 의연함이다. 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그것, 바로 포부가 그 사람이다. 당신의 포부는 무엇입니까? 나는 주문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나의 최선과 이상을 살고 있다. 나는 지금 나의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나의 이상이다. 나의 이상으로부터 나를 빼앗아 가는 모든 유혹을 나는 거부한다.” 나는 심연에서 고요히 울려 나오는 나의 포부의 소리에만 복종할 것이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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