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수석 대표 쿵쉬안유
“트럼프, 시 주석에 전화 걸어
대북제재 동참에 감사 표시”
언론ㆍ전문가도 ‘중국역할론’ 강조
“북미협상 카드 중 하나로
중국이 희생할 가능성 커” 지적도
남북ㆍ북미 정상회담 개최 합의 후 한반도 정세에서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을 우려했던 중국 분위기가 주말을 고비로 급변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유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와 언론도 “차이나 패싱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두고 조급함의 단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10, 11일 내내 ‘차이나 패싱’ 우려가 없음을 강조했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북미 정상회담 실현 여부는 관련국들이 얼마나 적극적인 역할을 할지에 달려 있다”면서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 지난 9일 전화통화는 중국의 독특한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대북제재 동참에 감사를 표시했다. 실제로 중국은 적극적인 대북제재를 미중 공조ㆍ협력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쿵 부부장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본조건과 다음 단계 방안으로 각각 쌍중단(雙中斷ㆍ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과 한미 합동군사훈련 동시중단), 쌍궤병행(雙軌竝行ㆍ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 동시진행)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외교부 관계자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2일 중국을 방문해 양제츠(陽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만나고 시 주석과의 면담을 추진하는 것도 중국의 역할이 중요함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영 매체들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신화통신은 “위협적 언사를 일삼고 무력을 과시해온 북미 간에는 입장 차이가 분명하다”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내려면 중국의 도(道ㆍ방안)를 떠나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신화통신은 또 “쌍중단ㆍ쌍궤병행 요구는 병증에 따라 내린 훌륭한 처방”이라며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역할과 원칙은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는 그 핵심에 있다”고 자평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중국은 한반도 핵위기 초기부터 북미 간 직접대화를 추진해왔고 한국이나 북한과의 관계보다 비핵화를 더 중시해왔다”면서 “중국 주변국 중에서 미국에 완전히 의지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에 북한의 ‘미국 매달리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지원하고 중국의 이익도 밀려나지 않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중국 역할론’을 거들었다. 청샤오허(成曉河)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북미 협상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지원을 필요로 할 것”이라며 “북한의 비핵화 조건으로 예상되는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적 보상은 중국 참여와 협력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국제문제연구원 궈셴강(郭憲綱) 연구원도 “북미대화는 중국의 쌍궤병행론에 부합한다”면서 “북한이 중국에 기대지 않으면 미국에 의존할 것이라는 제로섬 사고방식은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갑작스런 자신감 표명은 조급함의 발로라는 분석도 나왔다. 정융녠(鄭永年)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은 “북한이 중국을 다루려는 미국의 새로운 플랫폼이 되면서 중국이 ‘협상 카드’로 변질할 우려가 있다”면서 “중국이 역할론을 강조하는 건 북미협상 카드 중 하나로 중국이 희생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반증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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