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계승? 사람 맞냐”
현장 온 시민들 갖은 욕설
피해자 측 “사과의 행동 아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정무비서 성폭행 폭로 닷새 만인 9일 검찰에 자진 출석했다. 검찰은 안 전 지사를 상대로 밤 늦게까지 성폭행 의혹을 둘러싼 사실관계와 경위, 입장 등을 확인했다. 반면 피해자 측은 사과가 빠졌다며 비판했다.
전날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하고 잠적한 지 나흘 만에 남색 패딩 점퍼에 면바지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안 전 지사는 시종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날 오후 5시쯤 서울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한 안 전 지사는 청사 앞 포토라인 앞에서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 아내와 아이들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그간 닫았던 입을 열었다. 이어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엔 “조사 과정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진 출석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안 전 지사 출석 현장에 온 일부 시민은 갖은 욕설과 함께 “무슨 노무현 대통령을 계승하냐” “사람 맞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피해자 측 대리인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는 “안 전 지사의 일방적 출두 통보 매우 유감”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어떤 사과의 행동이나 태도가 아니다”고 밝혔다. 현장엔 취재진만 100여명이 모였다.
이날 안 전 지사 검찰 출석 소식이 알려진 건 오후 3시30분쯤, 안 전 지사 측근인 신형철 전 충남지사 비서실장이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서다.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검찰에 “소환해 달라”고 입장을 밝힌 다음날 스스로 검찰을 찾은 것이다. 검찰은 “안 전 지사가 출석하겠다는 연락을 오후 3시40분에 해 왔다, 법적 절차에 따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고, 안 전 지사를 맞았다.
검찰이 소환 통보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 전 지사가 자진 출석을 택한 데는 비난 여론 확산을 막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압수수색과 출국금지 등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는 점도 한 배경으로 거론된다.
안 전 지사의 조사는 10시간 가까이 진행돼 10일 오전 2시30분쯤이 돼서야 마무리됐다. 안 전 지사는 청사를 나서면서 “혐의를 인정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앞으로 검찰 조사에서 객관적 사실에 대해 말하겠다”고 했다. 피해자 김씨에게는 “저를 지지하고 저를 위해 열심히 했던 참모였다. 미안하다”며 “마음의 상실감, 배신감 여러 가지 다 미안하다”고 하기도 했다. 자진 출두한 배경에 대해서는 “소환을 기다렸지만 견딜 수 없게…”라며 말끝을 흐렸다. 검찰은 안 전 지사의 조사를 마치고 “고소사실 전반에 대해 안 전 지사의 입장을 들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이날 피해자 김지은씨를 불러 조사하는 등 안 전 지사 혐의 입증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네 번째 성폭행(지난달 25일)을 당한 마포구 오피스텔 외 안 전 지사의 범행이 이뤄진 곳으로 지목된 서울의 또 다른 장소도 파악해 압수수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날 마포구 오피스텔을 압수수색해 지난달 25일 전후 두 사람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날도 이 오피스텔을 찾아 사흘째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에 필요한 자료가 (오피스텔에)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오피스텔은 안 전 지사 친구 송모(53)씨가 설립한 H건설사가 지난해 8월 매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부터 서울에 일정이 있을 때마다 이 오피스텔을 이용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무상 사용이 드러날 경우 청탁금지법이나 뇌물죄 등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건설사 측은 “회사 직원들이 서울에 일이 있으면 머무른 숙소”라며 “안 전 지사가 이용한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 업체 본사는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있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2007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이 회사의 현지 법인이 위치해 있는 카타르 도하를 방문해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 속에는 송씨가 노 전 대통령과 같은 탁자에 앉아 격려사를 듣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김씨 외 또 다른 피해자 A씨는 다음주 중 고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전성협 관계자는 “경험이 풍부한 여성 변호사 두 명과 함께 고소장을 준비하고 있다”며 “A씨가 충남도청이 아닌 연구소 소속인데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과 추행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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