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혐의로 형사 입건돼 경찰 조사를 앞뒀던 배우 조민기(53)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 조사를 앞두고 사회적 비난과 이로 인한 정신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배우 오달수, 조재현씨 등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들의 신변 관리 필요성이 제기된다.
9일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이날 오후 4시 5분쯤 서울 광진구 구의동 한 대형 주상복합건물 지하 1층 주차장에 있는 본인 소유 창고 안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가 숨진 주상복합건물은 조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다.
지난해까지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로 학생을 가르친 조씨는 학생들을 상대로 위계에 의한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미투(Me Too)’ 폭로가 이어지면서 형사 입건됐다. 경찰은 전날까지 10여명의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고 12일 강제 추행 혐의로 조씨를 소환할 예정이었다.
조씨는 사망 직전 주변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연예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씨는 이날 오전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실망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뜻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조씨를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다. 10년 넘게 조씨와 친분을 이어 온 지인은 “조민기와 일주일 전에 통화했는데 정말 침울했다”며“가족 걱정을 하고 ‘얼굴 들고 못 살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조씨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한 방송 스태프는 “최근 조민기와 연락이 잘 안 돼 불안하다는 생각은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충북지방경찰청에 형사 입건된 조씨는 경찰에 휴대폰을 압수당한 상태다.
경찰은 ‘미투’ 폭로와 관련 조씨 등 8명을 수사 중이고 11명을 내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내부 의견을 조율 중이다. 필요에 따라 신속한 수사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씨의 성추행 의혹은 지난달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청주의 한 대학 연극학과 교수가 수년간 여학생들을 성추행해 사임했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불거졌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조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술자리에서 학생에게 강제로 신체 접촉을 하고, 학교 인근에 있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학생을 불러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의혹이 불거진 직후에는 “명백한 루머다. 한 가정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위법행위에 대해 엄중하고 단호하게 대처를 하고자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조씨는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해지된 후 매니저 없이 지내왔다. 그는 27일 공식 사과문을 통해 “피해자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제 잘못에 대해 법적, 사회적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씨가 재직 중 학생에게 보낸 카톡의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공개되는 등 성폭력 관련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청주대는 인사규정 제 44조 3호에 따라 조씨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했으며, 28일 이사회에서 면직이 확정됐다.
1982년 연극배우로 무대에 서기 시작한 조씨는 1991년 영화 ‘사의 찬미’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 뒤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는 2004년 청주대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2010년 같은 연극학과 조교수로 부임해 지난해까지 강의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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