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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국민을 속인 죄

입력
2018.03.09 15: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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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뜨겁던 2007년 여름, 이명박ㆍ박근혜 후보 간 운명을 가를 날 선 공방이 시작됐다. 박 후보 측은 이 후보가 도곡동 땅, 자동차 부품사 다스의 실소유주라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이 후보 측은 박 후보와 최태민 목사의 관계, 최 목사 자녀들의 육영재단 재산 횡령 및 수백억 원대 치부 의혹을 제기했다. 양측 반응은 판박이였다. 이 후보는 “헛소문” “그 비싼 땅이 내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일축했고, 박 후보도 “천부당 만부당한 이야기”라고 부인했다.

▦ 의혹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나온 두 사람은 17대, 18대 대통령이 됐다. 그들은 대통령만 되면 모든 의혹이 안개 걷히듯 사라질 거라 믿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의혹은 잠복했을 뿐, 질긴 생명력으로 부활해 사실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은 도곡동 땅과 다스 실소유주로 지목된 데 이어 다스 소송비 대납, 국가정보원 특별활동비 수수, 인사ㆍ공천 뇌물수수 등 재임 중 비리로 14일 검찰에 소환될 처지다. 박 전 대통령은 최 목사 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뒤 구속돼 다음달 6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 두 사람은 검찰의 기소ㆍ적용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후회막급일 것이다. 11년 전 국민에게 왜 솔직하지 못했는지, 세간의 의혹과 뒷말을 왜 경계의 교훈으로 삼지 않았는지, 심경이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재산이 많으니까, 부모 잃고 혼자 사니까,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깨끗한 나라를 만들 거라 믿고 표를 던진 국민들이 느낄 배신감에 비할까. 두 사람에 대한 두둔이나 동정 따위의 감정은 없다. 하지만 예상되는 직전 대통령 두 명의 구속사태는 참담하다.

▦ 이 전 대통령을 주범으로 적시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예정된 수순이다. 다만 발부 여부는 전적으로 이 전 대통령에게 달렸다. 자신을 가리키는 여러 진술과 증거에도 이 전 대통령이 혐의를 부인하면 ‘증거인멸 우려’ 때문에 영장 발부 가능성은 커진다. 사법의 권위를 무시한 채 정치재판화를 노리는 박 전 대통령도 ‘반성의 기미’가 없어 중형 선고를 피할 수 없다. 한때 이 나라를 이끈 지도자라면 협량(狹量)한 행태를 중단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고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11년 동안 두 사람의 거짓으로 시작된 의혹의 전개 과정을 목도하고, 이제는 자괴만 남은 국민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황상진 논설실장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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