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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선생님, 누군가에겐 유일한 희망이기에

입력
2018.03.09 13:2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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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주요 외신은 역대 최고 동계올림픽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훈훈하고 감동적인 스토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대표팀은 역대 최다 메달을 수확함으로써 국민 모두의 기쁨을 두 배로 키웠다.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뇌리에 특히 강하게 각인된 건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선수의 성공담이다. 평범한 학생의 미래를 선생님이 놀랍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아울러 우리 교육에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는 걸 엿본 듯해서 무척 뿌듯했다.

윤성빈 선수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압도적인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많은 전문가가 앞으로 적어도 10년간은 스켈레톤 종목을 호령하는 선수가 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윤성빈 선수가 스켈레톤 종목에 입문한 건 불과 6년 전이다. 고교 시절 체육선생님이 운동신경은 남달랐지만 특별한 존재감이 없던 체대 입시 준비생을 스켈레톤으로 이끌었다.

한국인은 영민한 두뇌, 전략적 사고, 성공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버무려 다양한 영역에서 놀라운 성과를 일궈낸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올림픽에선 그걸 능가하는 성과를 거두는 배경이기도 하다. 윤성빈 선수도 이 같은 성공방정식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세계적 선수로 발돋움했다. 힘들고 모진 하체 단련 훈련을 견뎌내며 전성기 차범근 선수를 능가하는 허벅지를 만들었다. 토할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내며 하루 8끼 식사로 스켈레톤에 최적화되게끔 체중을 늘렸다.

이처럼 윤성빈 선수의 성공에는 본인의 자질과 노력이 상당히 주효했다. 하지만 윤 선수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흔들릴 때마다 확신을 심어준 체육선생님의 혜안과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윤 선수는 존재하기 어렵다. 재목을 찾아내고 그 쓰임새를 꿰뚫어보는 선생님과의 조우를 통해 한 평범한 학생이 세계적 스포츠 스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은 윤성빈 선수와 같은 선생님 복이 없었다. 신창원은 자서전인 ‘신창원 907일의 고백’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에 대한 깊은 원망을 드러냈다. 5학년 때 월사금을 가져오지 못한 자신에게 가해진 선생님의 구박과 욕설 때문에 마음속에 악마가 고개를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창원은 당시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며 머리 한 번만 쓰다듬어 주었더라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범죄자가 되진 않았을 거라고 술회했다.

신창원의 원망 섞인 토로엔 일정 정도 자신의 범죄에 대한 합리화나 변명이 담겨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을 희대의 범죄자로 만든 주역으로 부모가 아닌 선생님을 지목한 건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무심한 교사가 던진 한 마디가 부모에게 많은 걸 기대하기 어려운 아동의 삶에 얼마나 치명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지 웅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과 성적이 신통치 않으면 꿈과 끼를 키울 기회를 얻기도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교교육을 통해 너무 많은 낙오자와 패자가 발생한다. 많은 학생이 승산이 거의 없는 성적 경쟁에 내몰려 아무런 보람이나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졸업할 때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직면한 승자독식 시대엔 성적을 높이는 데만 모든 걸 거는 건 무척 허망한 결과를 안겨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승자독식 시대엔 자신이 정말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것에 미래를 거는 게 훨씬 더 실제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사명감을 갖고 학생들에게 이 길을 열어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선생님이 거의 유일한 희망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윤성빈 선수의 사례는 깨어 있는 선생님이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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