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대가 제공ㆍ제재 완화 안돼”
남북 정상회담에 강한 견제구
동맹 무기 ‘美 대화 재개’ 훼방도
북미대화를 앞둔 미국을 두고 일본이 한국의 접근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대북 특별사절단으로 북한을 다녀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일행이 8일 미국으로 출국한 당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대북제재 완화나 북한에 대가제공을 하면 안된다”며 남북 정상회담을 지목해 강하게 견제하고 나섰다. 한미ㆍ미일 동맹 구도를 이용해 일본이 우리 정부의 미국에 대한 북미대화 권유에 제동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사표명과 관련,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토록 한미 양국에 요구할 것이라며 국제 여론전까지 본격화했다.
교도(共同)통신은 8일 일본 정부가 영변 핵시설 등에 대한 IAEA 사찰이 이뤄지도록 한미 양국과 연대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또 “앞으로 북한과 대화한다면 핵개발을 어떻게 중단시키는가가 열쇠가 될 것”이라는 외무성 간부 언급도 전했다. 이는 2009년 IAEA 사찰단을 추방한 북한이 다시 사찰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관방 부(副)장관도 7일 밤 민영방송 BS후지에 출연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IAEA 사찰에 응하는 등 구체적 프로세스에 돌입하지 않는 한 도저히 협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한국 특사단의 성과로 볼 수 있는 ‘대화 지속기간엔 핵실험ㆍ미사일 발사를 재개하지 않겠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북한이)핵·미사일을 뒤에서 개발할 수 있다. 결국엔 과거의 역사를 반복, 시간벌기에 이용될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정치권도 총출동한 상황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총리가 7일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 등에 대해 “세계가 경제제재 압력을 가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도 불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압력이 성공했다고 본다”고 규정했다. 자민당 나카야마 야스히데(中山泰秀) 중의원 외무위원장은 “한국은 북한 페이스에 올라 태워졌다. 일본과 의논하면서 가면 좋겠다”고 했고, 희망의당 나가지마 아키히사(長島昭久) 정조회장은 “핵과 미사일 개발 동결은 진일보지만 몇 번이나 속고 있는지 경계해야 한다. 미일 압력노선이 바꿔어선 안된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이 같은 견제는 아베 총리가 직접 조율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화에 응했다고 해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느슨하게 하거나 대가를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면서 “일본은 북한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선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훈 국정원장이 미국 방문에 이어 일본을 찾기로 한데 대해 “한일 양국이 깊이 있는 의견교환을 하고 싶다”고 엄중한 대응을 예고했다.
한반도 영향력 확보에 민감한 일본은 급격한 대화국면 전환에 당황한 듯 ‘재팬 패싱’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북한의 핵실험ㆍ미사일 도발이 한창이던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트럼프-아베 찰떡 궁합’을 내세워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책을 궁지에 몰아넣기 일쑤였지만 연초부터 급격한 변화에 당황한 기색이다. 특히 한국 정부가 미국측 설득에 나선 현재 국면에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앞서 우익매체들은 한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7일 청와대 국빈만찬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등장시켜 포옹하게 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위안부 이슈에 관심이 없다며 조소하기도 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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