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ㆍ장영은 엮음
민음사 발행ㆍ336쪽ㆍ1만2,000원
“지금은 계급전쟁 시대지만 미구에 남녀전쟁이 날 것이야.” 1933년 화가 나혜석(1896~1948)이 쓴 글의 한 대목이다. ‘미구에’ 보다는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의 예언은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요즘으로 치자면 ‘성지순례 글’쯤 되려나. 나혜석은 오랜 기간 동안 여성들의 뇌리 속에 사라지지 않는 한 징후였다. 앞뒤 잴 것 없이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여자 주제에 아무렇게나 까불어대다간 저리 비참하게 살다 객사하는 수가 있다’라는 징후. 추천사를 쓴 페미니스트 이민경이 “오래도록 객사 공포를 앓았다”고 토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나혜석을, 시대와의 불화로 사라진 자유로운 예술가로만 기억할 것인가. 이 책의 전략은 나혜석이 남긴 소설, 수필 등의 글을 약간의 해설과 함께 원전 그대로 제공하는 것이다. 객사 이전, 아니 객사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조는 도덕이 아니요 취미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요 경험이다” “자식은 악마다” 같은 명제들이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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