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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열전] ‘듣보잡’에서 명장으로…아스널과 벵거의 22년

입력
2018.03.08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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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부터 아스널 지휘봉을 잡고 있는 아르센 벵거. 로이터 연합뉴스
1996년부터 아스널 지휘봉을 잡고 있는 아르센 벵거. 로이터 연합뉴스

“아르센 누구?(Arsene Who?)”

1996년 9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널에 듣도 보도 못한 프랑스 출신 아르센 벵거가 부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런던은 들끓었다. 칼럼니스트 매튜 노먼은 “일본 J리그 출신인데다가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외국인 감독이 아스널을 맡는다니 농담이 아닐 수 없다”라며 비꼬았고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를 비롯한 영국 언론들은 그의 이름 아르센 벵거 대신 “아르센 누구?”라는 헤드라인을 앞세웠다. 일부 선수들은 그의 프랑스 발음이 섞인 발음을 흉내 내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깡마른 몸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그의 인상은 축구선수라기 보다는 학자에 더 가까웠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신인 벵거는 선수 시절 대부분을 스트라스부르에서 보냈다. 프랑스 1부 리그에 처음 모습을 나타낸 것도 29살 때. 1978~79시즌 스트라스부르가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출전 경력은 11경기에 불과했다.

1886년 창단한 아스널에서 110년 만에 최초로 외국인 감독이 된 벵거는 어디서도 환영 받지 못했다. 무명 출신인데다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독일 분데스리가 등 유럽 4대 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경험도 없었다. 아스널 감독으로 부임하기 직전에는 갓 출범한 일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지휘봉을 잡았으니 콧대 높은 영국인들은 그를 대놓고 무시했다.

벵거는 모든 것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축구 전략 수립은 잠시 접어 두고 선수들의 체질부터 바꿨다. 존 크로스의 평전 ‘아르센 벵거’에 따르면 벵거는 “술과 축구는 친구가 될 수 없다”며 취임 직후 선수단에 맥주 금지령을 내렸다. 식단에서는 과자, 햄버거, 적색 육류를 없앴고 찐 생선과 삶은 채소 위주로 먹으라고 지시했다. 그는 “일본 음식은 대부분 채소, 생선으로 이루어져있어 건강에 매우 좋다”고 말하며 기본적인 것부터 바꿔나갔다. 축구 변방 일본에서 감독 생활을 하며 얻은 노하우를 잉글랜드 구단에 이식했다.

훈련도 싹 바꿨다. 당시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구단 선수들은 훈련 시간에 자유롭게 행동하고 슈팅과 패스 위주로만 소화했다. 벵거는 스톱워치, 마네킹 등을 이용해 체계적으로 훈련을 관리했다. 축구 기술 외적으로도 스트레칭, 근력 운동과 플라이오메트릭 기법을 도입했다. 경기 전에는 선수단에 요가를 지시해 유연성을 기르기도 했다. 이 같은 혁신은 벵거가 유럽 주요 리그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변방 출신 지도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신 경기장 안에서는 선수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했다. 존 크로스는 벵거의 지도 스타일을 두고 “강한 규율로 팀을 관리했던 것과는 달리 그라운드 위 전술에 있어서는 패스 성공률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하며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했다”고 분석했다. 경기 도중 얼굴을 붉히며 선수들에게 큰 소리로 전술을 지시하고 화를 내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과 달리, 롱 패딩을 입고 벤치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티에리 앙리는 ‘2006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도 벵거는 평소와 다름없이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자서전에서 회상했다.

벵거는 유망주를 발굴해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내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티에리 앙리, 조지 웨아, 파트리크 비에이라, 릴리앙 튀랑 등이 모두 그에 의해 발굴돼 슈퍼스타로 성장했다. 벵거 부임 전까지 아스널은 홈 구장인 하이버리 스타디움이 1차 대전의 여파로 인해 사용 불가 공간이 많았고 매년 이적 시장이 열리면 선수를 사 모으기 급급해 ‘잉글랜드 은행’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초보 무명 감독 출신 벵거는 아스널에 오기 전까지 몸 담았던 구단에서 한 번도 넉넉한 이적 자금을 보장받은 적이 없었다. 선수도 없고 돈도 없는 구단의 감독인 벵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적 시장에 나온 저가의 유망주들을 발굴하는 일뿐이었다. 벵거는 “다른 구단들은 슈퍼스타를 사지만, 나는 슈퍼스타를 만든다”고 말했다.

‘벵거식 축구’를 입은 아스널은 서서히 강해졌다. 부임 첫 해 3위로 리그를 마감하며 우려를 불식시킨 그는 이듬해 1997~98시즌 FA컵과 리그를 동시에 석권했다. 자신을 증명하는데 재미를 붙인 벵거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1998~99시즌부터 연달아 3시즌을 준우승하며 숨을 고르더니 2001~02시즌 다시 한 번 더블을 기록했다. 그리고 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무패 우승을 기록하며 2003~04시즌 벵거와 아스널 모두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업적을 남기게 된다. 벵거가 지휘봉을 잡은 22년 동안 아스널은 리그 우승 3회와 FA컵 우승 7회를 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도 1998~99시즌 이후 개근 중이다.

화려한 업적을 뒤로 하고 벵거는 지금 코너에 몰려 있다. 2004~05시즌부터 현재까지 리그 우승컵을 한 번도 가져오지 못했다. 카라바오컵(리그컵)은 이번 시즌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회였지만 맨시티에 0-3으로 완패했다. 나머지 대회에선 우승 경쟁력이 사실상 없어졌다. 유망주 육성과 철저한 식단 관리는 부임 당시엔 혁신이었지만, 지금은 아스널만의 장점이 아니다. “감독은 매 순간 혁신가여야 한다”고 주장한 벵거가 더 이상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아스널의 부진은 2005년을 기점으로 해외 자본을 등에 업은 맨시티, 첼시 등이 급부상 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팬들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사퇴 여론이 압도적이다. 아스널과의 22년 해로에 마침표 찍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박순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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