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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유지’ 명분 한계… 밑빠진 독 물붓기보다 구조조정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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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유지’ 명분 한계… 밑빠진 독 물붓기보다 구조조정 원칙

입력
2018.03.08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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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자금 투입에도

시장선 이미 사망선고 받은 기업

더 이상 채권단 설득 어려워져

한국GM∙금호타이어 상황도 감안

향후 강제적 채무조정 가능

순조로운 회생 절차 이뤄질 수도

정부가 중견 조선사인 성동조선에 대해 장고 끝에 법정관리 선고를 내린 것은 연명식 지원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결과다. 구조조정 원칙을 뒤로한 채 부실기업에 대한 추가 지원을 강행할 경우 노조 반발로 그렇지 않아도 실타래가 꼬인 한국GM, 금호타이어의 구조조정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성동조선과 STX조선의 대주주인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합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구조조정 방안을 공식 발표한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8일 오전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릴 산업경쟁력강화 관계 장관회의에서 구조조정 방안이 최종 확정되겠지만 성동조선은 법정관리, STX조선엔 약간의 시간을 더 주는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란 최우선 국정 과제에도 불구하고 성동조선의 법정관리를 결정한 것은 추가 지원이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성동조선의 경우 이미 시장에선 사망 선고를 받은 기업이나 다름 없다. 이런 기업까지 ‘고용 유지’ 논리를 적용해 무리하게 지원할 경우 정부 스스로 ‘금융과 산업을 균형 있게 고려한다’는 구조조정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성동조선은 지난 2010년 4월부터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채권단이 4조원 가까운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여전히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진작부터 성동조선을 법정관리로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부는 그때마다 “조선경기가 살아나면 정상화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추가 지원을 단행했다. 채권단은 2014~2016년 한국무역보험공사까지 끌어 들여 1조3,888억원의 대출을 자본으로 바꿔주는 출자전환까지 했다. 그러나 정부도 더 이상은 채권단을 설득시킬 명분이 사라졌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수은이 2016년 성동조선을 상대로 스트레스테스트를 했을 때 이미 청산하는 게 낫다는 답이 나왔었다”며 “추가 지원에 대한 채권단의 반발도 정부로선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동조선에 대한 추가 지원은 수은의 자본건전성을 크게 떨어뜨릴 수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수은의 총자본비율은 12.82%로, 전체 은행 중 가장 낮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수은이 성동조선에 추가 자금을 투입할 경우 자본비율이 건전성 마지노선인 10.5%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결국 국민 혈세를 들여 추가 수혈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성동조선이 법정관리로 간다고 해서 당장 회사가 청산되는 것은 아니다. 법정관리 체제에선 강제적으로 채무조정을 할 수 있어 기업의 회생 절차가 더 순조롭게 진행될 수도 있다. STX조선 역시 2016년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1년 2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며 자본 잠식 상태에서 벗어났다. 정부가 STX조선에 시간을 더 준 것도 법정관리를 거치며 부실을 털어낸 데다 수주한 배도 16척이나 남아 조선업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견딜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조선업계에선 정부가 늦었지만 제대로 된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그간 지역경제 등을 고려해 지원책 위주로 정책을 짜온 탓에 구조조정 시기가 미뤄진 측면이 있다”며 “법정관리를 통해 재판부에서 회생과 청산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정상적인 구조조정 절차”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조선업 시장이 다소 나아진다 해도 2000년대 중후반과 같은 초호황기가 다시 돌아온다고 보긴 어렵다”며 “통폐합을 통해 경쟁력 있는 업체 중심으로 조선업이 재편되고 있는 만큼 정치적 판단 없이 기업 경쟁력만 보고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성동ㆍSTX 급의 중형 조선소는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만큼 회생되더라도 수주시장에서 큰 경쟁력을 갖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성동조선(통영)과 STX조선(창원)이 자리잡고 있는 경남 지역은 정부의 구조조정안 발표를 앞두고 잔뜩 긴장하고 있다. 지역 노동단체, 진보정당 등으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희생만 강요하는 구조조정안이 나온다면 맞서 싸우겠다”며 “조선산업이 뚜렷하게 회복되고 있는 만큼 두 조선소의 고용보장을 통한 회생으로 지역경제와 산업을 살리는 방안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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