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금융권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인터넷은행)이 돌풍을 일으켰다. 케이뱅크(4월)와 카카오뱅크(7월)는 출범과 동시에 간편한 계좌 개설과 낮은 대출금리 등을 앞세워 전 금융권에 걸쳐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그러나 이들이 가져온 변화가 찻잔 속 미풍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도약이 필요하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UC버클리 하스(Haas)비즈니스스쿨에서 만난 그레고리 라블랑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중요한 것은 확장가능 여부”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인터넷전문은행은 한 두 개 분야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이미 많은 핀테크ㆍ스타트업 업체에서도 결제(페이먼트), 학자금 융자 등 특정분야에 차별성을 가진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상호 경쟁이 심해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신용카드대출 등 복수의 사업분야를 갖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의 조나단 왈렌 연구원도 지난달 25일 “인터넷은행이 지금처럼 다소 저렴한 (대출)이자율만 제공해선 장기적으로 승산이 없다”고 지적했다. 기존 은행 이용자들이 약간 낮은 수준의 이자 혜택 때문에 주택담보대출(모기지), 퇴직연금 관리 등 기존 대형은행에서 제공하는 ‘종합서비스’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인터넷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갈아타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라블랑 교수와 왈렌 연구원은 “인터넷은행이 현재의 편리함에 더해 다양한 서비스까지 제공하게 되면 미래엔 금융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차별화도 중요하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미국 인터넷전문은행의 진입ㆍ퇴출 특징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95~2014년 미국에선 인터넷은행이 총 38개나 등장했지만 이중 14개는 독자 시장을 확보하지 못해 자진폐업 하거나 피인수됐다. 반면 중금리 대출이나 현금자산관리 서비스 등 특색있는 서비스를 제공한 곳은 생존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인터넷은행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통해 차별화를 꾀하는 게 쉽지 않다. 서비스 확대를 위해선 ‘실탄’이 필요하지만, 은산분리 규제로 인해 자본 확충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한도는 10%(의결권은 4%)로 제한돼 있다. 미국에선 은행지주회사법에 따라 은행을 지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산업자본이 25%까지 지분을 가질 수 있다.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선 주법에 따라 기업이 지분의 100%를 보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미국에서는 대주주가 (소유 은행에서) 일정 범위 이상으로 큰 금액 또는 낮은 금리로 대출 받는 등의 행위를 금융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가혹할 만큼 처벌하고 있는 것을 참조할 만 하다”며 “인터넷은행들이 보다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줘야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게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클리=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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