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 인터뷰
#1
구정 공세 50주년 세계적 관심
베트남 정부 분위기도 변화
과거 돌아볼 여유 생기며
민간행사에 유명인사 참석
#2
한국이 ‘나몰라라’ 하는 건
日의 위안부 대응과 비슷
“한국 정부는 이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베트남 유학 1세대로 베트남전을 둘러싼 한국과 베트남의 어두운 과거사 문제를 다뤄온 구수정(52)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가 양국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한국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지난 5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전 종전을 앞당긴 ‘구정대공세’ 50주년을 맞아 세계 주요 언론들이 베트남전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며 “한국도 민간인 학살 문제를 들여다 볼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또 “베트남을 신남방정책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한국 정부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사과를 한다면 올해가 적기”라고 강조했다.
구 이사는 외교적으로 껄끄러울 수도 있는 우리 정부의 공식 사과가 필요한 이유로 베트남 내부의 분위기 변화를 이유로 들었다. 지금까지는 베트남 정부가 사과를 원치 않았지만, 전후 40년의 세월로 내부 통합이 마무리되면서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됐지만, 무력통일이었다. 서로 상처가 깊은 상황에서 과거사가 전면에 부상하면 내부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베트남 정부는 통합과 경제성장에만 주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됐다고 보는 것 같다. 과거에는 베트남 정부가 민간 차원의 행사를 제지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비중 있는 인물들이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사과 표시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베트남 정부와 국민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구 이사는 “김대중(2001년), 노무현(2004년) 전 대통령 때 부분적 사과 표명이 있었지만 베트남 언론에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고 한국 언론을 통해 한국인만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은 베트남 사람들이 모르는 사과를 반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 이사는 베트남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일본과 한국 사이의 과거사 문제로 설명했다.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이었으므로, 민간인 학살 문제는 궁극적으로 미국 책임이라는 얘기가 (한국에서는) 나온다. 이런 자세라면 한국도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일본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가해자가 위안부 문제 끝났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도 베트남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공식 사과가 빚어낼 지도 모를 한국 내부 논란에 대해서는 “거시적, 대승적 차원에서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이사는 “우리가 나서면 세계는 우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 정도 갖고도 하는데, 일본은 더 큰 전쟁범죄를 부인하고 있다’는 국제 여론으로 일본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구 이사는 문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사회 전반의 베트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축사에서 ‘베트남전 참전 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말한 뒤 (베트남에서)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며 “일본인 학자가 ‘한국전쟁은 신이 일본에 내린 선물’이라고 한 것과 다름 없는 이야기였다”고 아쉬워했다.
다음은 구 이사와의 인터뷰 전문.
_11일 대규모 참배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무슨 행사인가.
“한국군에 의해 135명이 사망한 중부 하미마을 학살 50주기 위령제를 맞아 각계 인사들이 베트남을 찾아 사과하는 행사다. 40여명의 대규모 참배단이 8일부터 1주일 동안 피해지역을 돈다. 처음으로 정치인(현직 국회의원)과 보수단체(한국자유총연맹 지회장)가 참석한다.”
_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미 사과,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 언론을 통해 한국인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도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 축전을 통해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했지만, 현지 언론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한국은 베트남 사람들이 모르는 사과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2001년 8월 고 김 전 대통령은 방한한 쩐 득 르엉 주석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고, 고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10월 하노이 호찌민 묘소 참배에서 “우리 국민은 마음의 빚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0월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면서 “대한민국은 베트남이 크게 발전하기를 바라는 나라라는 점을 알아달라”며 에둘러 유감을 표한 바 있다.)
_전직 대통령들이 유감을 표하자 현장 분위기가 싸늘해졌다고 한다. 베트남은 사과를 원치 않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들 내부 사정을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다. 1975년 통일을 이룩했지만 그게 무력통일이었다. 서로 상처가 시뻘건 상황에서 과거사가 전면에 부상하면 또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베트남은 지금까지 통합과 동시에 경제성장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됐다고 보는 것 같다. 제주4ㆍ3사건에서처럼 한국도 과거사 문제가 통합, 성장 후 부상했다.”
_과거사 관련 베트남 내부 분위기 변화로 보는 근거는.
“20년 전부터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하고 있다. 이 행사를 지방성, 국가차원에서 제지 당한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없다. 행사에 참석하는 베트남 측 인사들도 비중 있는 인물들이다. 최근에는 우리 활동을 베트남이 지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_베트남에서는 한국인들의 사과에 대해 ‘한국인 중심 사고’라고 한다.
“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이었고, 한국군은 미 용병에 불과했다는 점, 그래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는 궁극적으로 미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자세로 가면 한국도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일본이나 다름없게 된다. 지난주 문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가해자가 위안부 문제 끝났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우리도 베트남의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_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과 정부 차원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위안부 문제 비교는 무리가 있다.
“나도 같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지 않다. 한일 정부의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에도 위안부 할머니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지 않나. ‘베트남 정부는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듣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_정부가 사과한다면 월남전 참전군인 등 우리 안에서도 논란이 커질 것이다.
“거시적, 대승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나서면 세계는 우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 정도 갖고도 하는데, 일본은 더 큰 전쟁범죄를 부인하고 있다’는 여론은 일본에 부담이 될 것이다.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그를 통해 한국이 아시아에서만큼은 평화를 주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향적인 자세는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참전군인들을 가해자라고 이야기하는 곳은 없다. 그들도 피해자다. 그들 사이서도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점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_베트남 언론, 외신들도 베트남전을 재조명하고 있다는데 사실인가.
“1968년 음력 설을 맞아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기습공격을 감행, 미군(남베트남군 포함)에 타격을 가함으로써 세계의 반전 여론을 확산시킨 작전이다. ‘내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이 이어졌고, 민간인 피해도 커진 시점이다. 특히 미국 언론은 1968년 당시의 한국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_외신들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빠지지 않는 건 ‘한국군은 베트남전 중에 위안부를 운영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2, 3년 전쯤 일본 산케이가 한국군에 의한 전시 성폭행이 있었다고 보도한 뒤다. 피해지역만 20년을 다니고 있는데, 한국군 위안소나, 베트남 위안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단 한번도 그 정황이나 증거는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한국군의 위안소 운영은 없었다고 본다.”
_양국 관계 발전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베트남전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다. 지난해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축사에서 ‘베트남전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경제가 살아났다’고 해서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일본인 학자가 ‘한국전은 신이 일본에 내린 선물’이라고 한 것과 다름 없는 이야기였다. 이와 함께 베트남에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사과가 필요하다. 치열했던 구정대공세와 한국군 민간인 학살 50주기를 맞는 올해가 적기라고 생각한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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