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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텍스트의 제국,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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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텍스트의 제국, 중국

입력
2018.03.05 19: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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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의 영토는 유럽의 1.8배 가까이 된다. 영토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인구도 유럽(7억여 명)의 2배 가량 된다. 2,000여 년 전, 진시황이 황하와 장강의 대부분 유역을 아우른 대제국을 건설한 이래 유지해온, 아니 줄곧 키워온 ‘남다른 거대함’이 급기야 여기까지 이르렀음이다.

반면에 영토와 인구가 그렇게 확대됐음에도 중국문화는 장기간에 걸친 단절이나 근본적 변화 없이, 비교적 단일한 결을 이루며 이어져왔다. 적어도 거시적 차원에서 볼 때는 분명히 그러했다. 강역이 확대되어 기후 등 자연조건의 격차가 훨씬 더 벌어졌음에도, 적잖은 세월 동안 비한족(非漢族) 유목민의 통치를 경험했음에도 그러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 칼럼(‘우리에게는 없고 중국에는 있는 것’, 2018년 2월6일)에서 소개했듯이, 논자들이 중국의 정체를 ‘문화 중국’으로 규정한 이유다. 종족이 어떠하든, 어디 출신이든 간에 중국 전통문화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으면 모두 다 중국으로 간주해왔다는 것이다.

“규모를 키워가되 문화는 하나로” 모아온 이러한 전통은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중국은 대만과의 통일은 물론,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에 공세적으로 임한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일대에 강력한 패권을 행사하겠다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를 밀고나가는 한편, 전 세계 중국인을 대상으로 언어적 통일성을 기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타국의 영토를 물리적으로 점령하기 힘들어진 오늘날, 자국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관철되는 형식으로 규모를 키워감과 동시에 문화적으론 자국 강역을 넘어선 범위에서 그 동질성을 도모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역대 중국이 이러한 특성을 지니게 된 데는 그들이 ‘텍스트의 제국’이었다는 점이 큰 몫을 했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제국의 기틀을 닦고 경영하며 갱신해간 덕분에 전근대와 근대 같이, 근본적으로 다른 문명 조건을 관통하며 문화 중국이 구현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경전으로부터’이다. 문화 중국은, 중국다움의 고갱이가 중화(中華)로 대변되는 중국 전통문화에서 비롯됐음을 의미한다. 핵심 고전이기도 한 경전은 대대로 그러한 전통문화의 중핵이었다. 실제로 역대 왕조는 집권의 합법성부터 역사적 정당성 등을 모두 경전으로부터 빚어냈다. 경전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필요할 때면 고전의 일부를 과감히 경전으로 재규정하며 새롭게 전개된 시대적 여건에 맞도록 중화를 갱신하여 왔다. 비유컨대 역대 중국은 경전으로 쌓은 바벨탑인 셈이다.

둘째는 ‘화두(topic)의 제국’이다.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시시각각으로 변이되는 당대 현실에 능동적, 건설적으로 대처해가는 한편 미래를 선제적으로 대비해갈 필요가 있다. 이때 제기되는 제반 이슈와 현안 등을 경전으로 대표되는 고전에 비춰보면서 사고하는 것이 고전 재해석의 실상이었다. 이는 ‘문명의 화두’를 위시하여 천하 경영에 필요한 제반 화두를 당대적 소요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이를 통해 변이된 문명 조건에, 새로이 제기된 시대적 필요에 탄력적으로 대처해가며 중화의 생명력에 양분과 시의성을 공급해왔다.

셋째는 텍스트의 집적과 재정리다. 화두를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참조체계의 구축이 선행 또는 병행되어야 한다. 역대 중국이 통일 왕조 초기에 대규모 편찬사업을 벌인 까닭이다. 북송 초 조정이 나서서 태평어람(太平御覽) 등 방대한 규모의 4대 백과전서를 편찬하고, 명대와 청대엔 각각 영락대전(永樂大典)과 사고전서(四庫全書) 같은 대규모 편찬 사업을 벌여 문명의 제반 층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장악하고자 했음이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이는 ‘유장(儒藏)’ 사업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방대한 자료를 디지털화 하고 있는 근자의 중국 행보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국가 주석의 임기를 제한한 헌법 조문의 폐지를 둘러싸고 중국이 국제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시절 1인 독재를 혹독하게 경험했고, 그것을 3대째 세습해온 북한과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시진핑 주석의 그러한 시도가 퇴행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중국을 백안시하거나 낮잡아보는 것은 금물이다. 힘의 논리가 횡행하는 냉엄한 국제 현실에서는 힘센 상대의 잘못을 비판했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우리가 그들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가 힘이 세면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모른 채 넘어가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개인부터 국가,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비판은 반드시 타당하고 예리하게, 또 잘못이 바로잡힐 때까지 지속돼야 한다. 다만 국가 차원에선 타국에 대한 우리의 비판이 국익으로 수렴되게 하는 활동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상대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중국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에 관한 한 세계 제일의 지식국가요, 정보국가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전근대기 조선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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