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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모는 현대인 습관? 그리스ㆍ로마인도 털 뽑았다

입력
2018.03.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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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귀부인들 코털까지 모조리 제거

이집트선 노예ㆍ이방인만 제모 안 해

겨드랑이 털을 왜 깎아야 하나. 한국일보 자료사진
겨드랑이 털을 왜 깎아야 하나.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모는 현대에 들어와서 생긴 여성들의 습관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근대 이전 고대 그리스 여인 조각상부터 중세시대 누드화까지 여성을 그린 작품에는 털이 한 올도 없이 매끄럽다.

작품에서만 털을 묘사하지 않은 게 아니라, 실제로 당시 여성들이 제모를 한 것이 반영된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고대 이집트 신전에서는 제사 의식 중 일부분으로 털 뽑기가 행해졌고, 실제 신들의 몸에는 털이 없다고 믿었다고 한다. 미용 목적으로도 물론 제모는 이뤄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남녀 모두 몸에 난 털을 말끔하게 다듬었다. 제모하지 않은 사람은 노예, 이방인 정도였다. 제모를 위한 면도칼은 돌, 청동으로 만든 것이었다. 족집게도 사용됐다.

그리스ㆍ로마시대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로마 상류층 여성들은 바닷조개를 족집게처럼 써서 종아리 등에 난 털을 뽑았고, 그리스에서는 등잔불로 털을 지져 없앴다. 로마 귀부인들은 콧구멍 속 털까지도 모조리 뽑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잔털을 제거할 때 탈모제인 ‘석황’을 주로 사용했다. 제초제 등으로 사용되는 석황 성분은 피부를 상하게 할 위험이 컸지만 매끄러운 살결을 위해 여성들은 그 정도 위험은 감수했다고 알려져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부인들은 고귀함의 상징이었던 ‘넓은 이마’를 만들기 위해 두개골 상부 머리카락을 뽑았다고 전해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인 ‘모나리자’가 대표적이다. ‘그녀에게는 왜 눈썹이 없을까’는 아직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 거리이지만, 그 당시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눈썹과 속눈썹 또한 제모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19세기 들어서면서 잠시 여성의 털에 관대해진 적도 있다. 바로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여성 해방운동이 서구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될 때다. 이때 제모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 같은 상황은 미술작품에 그대로 반영됐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다. 이 작품은 ‘인간’을 그린 최초의 누드화로 여성 음부를 부드러운 그늘로 처리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제모는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소매 없는 드레스가 유행하면서부터다. 1915년 미국의 패션지 ‘하퍼’는 반라나 다름없는 여성의 사진과 그 옷의 제단 견본을 부록으로 실었다. 그러자 여성지 칼럼니스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겨드랑이와 팔뚝의 털을 면도할 것을 권했다.

이때다 싶어 미국 화장품 회사들도 제모제를 상품으로 출시하기 시작했다. 20세기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가 현대적 면도기를 발명하면서 “겨드랑이에 털이 있는 여성은 아름답지 않다”는 광고 문구로 여성들의 제모를 부채질했다. 이때 만들어진 ‘여자는 제모를 해야 한다’는 명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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