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앞둔 중계동 백사마을
이사가며 버려진 개들 많아
야생화한 들개보호소 시범운영
11마리 구조 2마리 입양 보내
배설물 문제 개체수 증가 줄어
주민간 갈등 줄고 만족도 높아
"훈련시키면 반려견도 가능해요"
서울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 일대 공터 한 켠에 설치된 철망 울타리 안에는 개들이 산다. 현재 이곳에 머무는 개들은 7마리. 모두 길게는 수년간 주인 없이 떠돌거나 주인이 있지만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이른바 ‘들개’들이다.
오전에는 한국성서대학교 동물 동아리 ‘멍냥지껄’ 회원 9명이 순번을 정해 밥을 주고 산책을 시키고 오후에는 주민 7, 8명이 시간을 내어 돌본다. 지난달 중순부터 돌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멍냥지껄 회원인 조수민(22), 최승인(22)씨는 “처음에는 사람을 낯설어했던 개들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며 “한달 가량 지났는데 벌써 개들과 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물과 행복한 104마을’이라는 뜻으로 ‘동행 104’라 이름 붙인 이곳은 지난해 12월 초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백사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여름 서울시, 동물보호단체 카라와 백사마을을 비롯 재개발지역 반려동물 현황을 조사하던 중 사람에게 버려진 반려견들이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게 된 들개 문제에 주목하게 됐고, 이곳에 소규모 보호소를 시범 운영하게 됐다.
들개는 유기견과는 또다른 문제다. 서울시에 따르면 재개발지역에 있는 들개는 170여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람을 따르는 개체도 있지만 야생화된 습성을 갖고 있는데다 대부분 혼종견이라 포획을 해도 반려견으로서 입양돼 살아가기는 어렵다. 실제 지난 2016년 기준 서울시가 잡은 들개 115마리 가운데 절반이 넘는 63마리가 안락사됐다.
김성호 교수와 카라, 서울시, 노원구, 백사마을 주민 모두 들개들의 안락사가 능사가 아니라는 데에 뜻을 같이 했다. 적어도 개들에게 최소한의 기회라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주민들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개들을 포획했다. 소유권 문제 해결을 위해 동물보호시스템에 등록한 이후 중성화 수술까지 마쳤다. 지금까지 구조한 개 11마리 가운데 새끼 2마리는 입양을 보냈고, 나머지 2마리는 임시 보호를 맡겼다. 김지현 백사마을 통장은 “이사가면서 개들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주민들이 불쌍하게 여기고 남은 개들에게 잔반을 주면서 돌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관리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행 104를 통해 배설물 문제로 인한 주민 갈등이나 개체 수 증가를 막을 수 있어 주민들도 만족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남은 7마리 가운데서도 망치(9개월 추정ㆍ수컷), 경일(9개월 추정ㆍ수컷), 래미(3세 추정ㆍ암컷)는 당장 입양을 가도 손색이 없을 만큼 사람을 잘 따르고 애교를 뽐낸다. 나머지 섭이(5세 추정ㆍ수컷), 브라보(1세 추정ㆍ수컷), 조이(1세 추정ㆍ수컷), 조일(8개월 추정ㆍ수컷)도 인내심을 가지고 훈련을 하다 보면 충분히 반려견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김성호 교수는 “들개라고 하면 무조건 위험하고 길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포획해서 돌보아 보니 반려견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런 개들에게 최소한의 살아갈 기회도 주지 않고 안락사 하는 게 맞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돌봄 사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포획부터 관리, 입양까지 참여자들의 노력에 재정적 지원이 더해져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동물보호단체나 자원봉사자들, 일부 주민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또 들개들을 안락사가 허용되는 동물보호소의 유기동물과 다르게 관리하는 데 대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 동행 104 관계자들도 백사마을을 무조건 확산시켜야 하는 롤모델로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들개들도 훈련을 시키면 반려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이라는 점, 주민과 함께 대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동행 104가 들개 문제 해결을 위해 완벽한 대안이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주민들과 함께 문제해결을 위해 시도를 하고, 해결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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