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사회, #미투 운동 억누르기
“조직 반하는 돌발행동” 치부하며
되레 “트러블메이커” 비난하기도
가해자들 대부분 상사ㆍ임원들
상황 왜곡ㆍ희석 분위기 조장 만연
전체 임직원이 20여명 되는 서울의 한 회사에 다니는 강모(29)씨는 지난달 중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가 한 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에 동참하겠다고 마음먹고 회사 간부가 저지른 성희롱 추태를 폭로한 건데, 주변 사람들 반응에 두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글을 내려야 했다. 직속 상사가 “왜 긁어 부스럼 내느냐”며 회사 안에서 대화로 조용히 해결해야 한다”고 다그친 것은 조금은 예상했던 일. 하지만 직장 동료들까지 “꼭 일을 크게 만들어야겠느냐”고 타박하고 나서는 것까지 참을 재간은 없었다. 강씨는 “직장에서는 미투 폭로자가 모난 돌이라 정만 맞을 수밖에 없다”며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고 험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회 각계 각층 유명인사를 상대로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 운동’이 일반 직장에서는 아직 갖은 핍박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폭로가 나오면 여론이 이를 지탄하고, 이름 있는 가해자가 이를 인정하면서 사과하는 게 통상의 과정. 하지만 직장 등 일반인이 제기하는 미투는 아직 ‘조직에 반하는 돌발 행동’으로 치부되면서 폭로자가 오히려 ‘트러블 메이커’로 비난을 받아야만 하는 실정이다.
산업미술 업계에서 나름 입지가 탄탄하다는 P회사에서 일한 정모(30)씨는 최근 언론에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뒤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신세가 됐다. 지난달 초 회식 자리에서 회사 고문 오모(46)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건데, 정씨가 회사 내에서 ‘쳐다만 봐도 성추행이라고 하는 예민한 여직원’이 돼 버린 것이다.
정씨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하는 회사가 무엇보다 부담이었다. 회식이 있었던 술집 폐쇄회로(CC)TV에 찍힌 추행 장면에 가해자인 오씨는 현재 경찰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 회사 측에서는 정씨에게 “대화를 하자. 사과를 하고 싶다”고 해 왔지만, 직원들에겐 “격려차원에서 가볍게 쓰다듬은 것인데 예민하게 확대 해석한 것 같다”는 말을 퍼뜨리는 등 사실상의 ‘마녀 사냥’을 했다는 게 정씨 주장이다. 물론 회사 측은 “사건을 호도하려는 말을 직원들에게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처럼 직장 사회는 여전히 여러 형태로 미투 운동을 억누르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상황을 왜곡 또는 희석시키거나 피해당사자를 트러블메이커로 만드는 식의 분위기 조장이다. 본보에 ‘미투’ 이메일을 보낸 한 미술대학 출신의 한 독자는 “학교부터 업계까지 성희롱과 성추행을 반복해 당해왔다”며 “(소속된 곳에서) 미투 운동을 비하하는 분위기에 어디다가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했다. 모 중견기업에 다니는 한 직장인은 “가해자들이 대부분 상사나 임원이라 더는 이 조직에서 일을 못해도 괜찮다는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털어놨다. 공무원 사회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 직원 내부 게시판에는 지난달 7일 '우리도 미투할까요'라는 글이 올라온 이후 지난달 말까지 314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렸다. 이 중에는 “얼마 전 5급이 7급 신규 직원을 노래방에 데려가 허벅지를 만지고 브래지어 끈을 튕겼다"는 등 많은 폭로가 담겼지만,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반쪽 미투’에 그치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두나 변호사는 “직장 조직에서의 미투는 현실적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면서 “결국 주변 사람들이 이를 지지해주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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