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보이스(Chicago Boys). 남미에서 미국 유학파 경제학자들을 비웃을 때 썼던 말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미국 유학 가서 좋은 집에 좋은 차에 편안하게 생활하고 와서는, 미국의 어두운 면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시카고 학파’ 운운하면서 무조건 시장이 최고라고 외치는 이들을 뜻한다. 경멸적인 어감까지 고스란히 살려서 우리 말로 풀자면 ‘어설프게 미국 물 좀 마신 애송이들’쯤 될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은 ‘북유럽 보이스’가 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 아래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북유럽 5개국을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는 ‘오로지 일본의 맛’이 먼저 번역, 소개된 영국 언론인 마이클 부스. 이 사람도 외부인 아닐까 싶은데 강점이 있다. 부인이 덴마크 사람일 뿐 아니라, 덴마크를 제2 고향 삼아 실제 살고 있다. 북유럽 사회를, 그 속살까지 좀 넘겨다 본 풍월이 있다는 뜻이다.
제목은 중의적이다. 원제가 ‘The almost nearly perfect people’인데 perfect 앞에다 almost nearly라는 호들갑스러운 수식을 붙여뒀다. 이 말을 할 때 저자가 환하게 웃으며 ‘엄지 척’을 했을지, 아니면 흔들리는 시선을 땅바닥에 내리 꽂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지에 대한 최종 판단은 각자가 내리도록 하자. 책에는 이 두 얼굴의 표정을 아주 유머러스하게 잘 섞여있다.
먼저 휘게, 얀테의 법칙, 라곰 같은, 최근 몇 년간 온갖 매체에서 선진 북유럽 라이프 스타일을 알려주겠다며 써먹었던 용어들. 저자는 이를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소작농 사회, 뒤이어 등장한 사민주의 국가체제에서 비롯된 숨막히는 사회적 순응’으로 간주한다. 한마디로 뻔히 다 아는 처지니 뛰어봤자 벼룩이요, 튀어봤자 죽음이란 얘기다.
길거리만 나가보면 안다. 현란한 간판이 없다. 미용실 이름은 ‘헤어’다. 옷과 신발 파는 가게는 ‘옷과 신발’이다. 서점은 ‘서적상’이다. 뭘 팔고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알리는 것조차 너무 튄다 생각했던지 ‘16번지’, 혹은 ‘가게’라는 이름의 가게도 있다. 이제 그 정도는 아니라고 북유럽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지만 조금 더 속 터놓고 얘기하면 이 숨막히는 분위기에 질식사할 뻔 했던 이런저런 경험들을 소근소근 들려준다.
광범위한 사회적 억압을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이는 순응주의적 태도는 진지한 성찰, 반성, 토론을 막는 부작용도 있다. 대륙의 과묵함을 음흉하다 생각하는 영국 사람답게 저자는 이런 분위기가 혹시 북유럽의 어두운 역사, 곧 ‘나치 협력’과도 관련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해 들어간다. 북유럽 국가들이 ‘정치적 올바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또한 나치 협력에 대한 죄의식 아닐까 추리해보기도 한다.
다음은 남녀평등. 알려졌다시피 북유럽은 남녀가 가장 평등한,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장 활발한 사회다. 속내를 보면 이는 ‘여성 존중’ 보다 ‘일손 부족’ 때문이다. 북유럽에서도 조금 다른 이유로 출산ㆍ육아 논쟁이 벌어진다. 다름 아니라 여성을 일터(‘부엌’이 절대 아니다)로 너무 내몰아대는 무언의 사회적 압박이 너무 강한 거 아니냐는 얘기들이다.
동시에 북유럽, 특히 스웨덴 남성은 이제 더 이상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도, 문을 열어주지도, 밥이나 술을 사지도, 칭찬을 하지도, 선물을 하지도 않는다. 동네, 학교, 직장 친구나 선후배 관계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엄연한 연인 사이인데도 그렇다. 오죽 했으면 스웨덴 남자를 사귄 영국인 여자는 한동안 “그 남자가 게이이거나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왜. 답변은 간단하다. 우리 모두는 독립된, 평등한 개인일 뿐이니까. 활활 불타올라야 할 남녀관계가 이러니 다른 관계는 볼 것도 없다. 저자 같은 외국인이 보기에 북유럽 사회는 ‘무례한 은둔형 외톨이’들이 출몰하는 사회다.
경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시장경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 놀라 뒷목잡고 거품물고 쓰러질 만한 얘기들이 가득한 곳이 북유럽이다. 높은 세율, 거대한 관료제, 엄청난 복지제도, 광범위한 공공 부문, 직업은 당연히 편안한 걸 고르고 일은 되도록 적게 하는 게 좋다고 믿는 국민들, 전 직원의 동의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으려는 ‘합의’에 대한 강박 등. 그래서 북유럽 경제는 ‘호박벌 경제’라고도 불린다. 딱 봐서는 절대 못날 것 같은 데 잘 날아다니는 호박벌 같다는 얘기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마이클 부스 지음ㆍ김경영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552쪽ㆍ1만8,500원
사실 ‘국민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분석은, 낄낄거리며 재미있게 읽을 거리는 되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럼에도 이 책의 묘미는 저자가 기자라는 점이다. 오로라를 보러 북극권으로 가는 장거리 버스를 타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빌 브라이슨의 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21세기북스)과 비교하자면, 이 책은 한 노인네의 위악적이고 냉소적인 투덜거림 대신 각국에 대한 취재, 인터뷰 내용을 풍부하게 실었다. 가령 ‘사회적 신뢰가 높기에 복지국가가 가능했을까, 복지국가를 했기에 사회적 신뢰가 높아졌을까’ 같은 질문은 흥미롭지 않은가.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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