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6월 지방선거서 대선패배 설욕 별러
3무 빠진 한국당, 힘과 꾀 없어 승리 난망
중진ㆍ소장 합심해 "개혁정풍" 큰소리 내야
바른미래당이 중도 혹은 중도보수의 정체성으로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계층과 세대를 포섭하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기득권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 청산을 주장하는 안철수의 메시지나, 민주공화정 원리에 기초한 보수의 개혁과 재건을 말하는 유승민의 슬로건이 거점과 텃밭을 기반으로 손님을 끌어온 우리 정치풍토에서 너무 맹숭맹숭하게 들려서다. 보수야당의 역사에 어울리지 않는 홍준표의 좌충우돌 리더십이 지금껏 자유한국당에서 통한 배경이자 토양이다.
이른바 '대안부재론'에 기생해 생존해 온 한국당이 보수진영의 여망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두말할 나위 없이 6ㆍ13 지방선거에서 지난해 5ㆍ9 대선과 다른 성과를 내 박근혜와 함께 몰락한 보수세력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다. 보수논객들이 최근 지역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의 의미까지 뒤집어 "(유능한) 사람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친북ㆍ급진 정책을 일삼는) 정권을 중간 평가하는 선거"라고 강조하며 애타게 한국당의 분발을 촉구하는 이유다.
그럼 이런 기대에 보답할 힘과 꾀가 한국당에 있을까. 답은 부정적이다. 구성원들의 무기력과 무지ㆍ무능, 그리고 무책임과 리더십의 빈곤 때문이다. 우선 한국당은 19대 대선에서 참패한 후 "통합과 화합의 정치로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고 보수의 가치를 발전ㆍ계승하는 100년 정당이 되겠다"고 거창한 참회록을 썼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역할과 위치를 찾지 못하는 무기력에 빠져 있다. 116석에 이르는 몸집은 집권당에 버금가지만 체질은 각자도생의 웰빙 정당이고 지력은 초딩 수준이다. 정권을 왜 잃었는지 통절하게 따져본 뒤 쇄신의 깃발을 들고 재집권 플랜을 날마다 고민해도 부족할 터인데도, 초ㆍ재선, 중진 가릴 것 없이 강 건너 불이다.
무기력은 무지와 무능으로 이어진다. 2000년 이후의 사례만 봐도, 보수든 진보든,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에선 으레 소장파를 중심으로 개혁적 정풍운동이 일어나 노선과 인ㆍ물적 기반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연결됐다. 희한하게도 한국당에는 그런 일도, 싹도 보이지 않는다. 친박 청산 등 대통령 탄핵의 상처를 치유하고 씻어내는 일이 급해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큰 이유는 학습부족에 따른 의지박약, '찍히면 나만 손해'라는 보신주의가 부른 용기결핍일 것이다.
무책임은 한국당이 툭하면 보이콧카드를 꺼내 들고 장외로 나간 작년 8월 이후 이른바 4선 이상 중진들이 홍 대표 등 지도부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하면서도 '침묵의 카르텔'에 안주해온 데서 잘 드러난다. 그 중진들이 최근 홍 대표에게 "얼굴보고 회의 좀 하자"고 요청했다가 되레 "설치지 말라"고 면박만 당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될 얘기다. 밖에서는 '홍준표 사당화' 운운하던 이들이 격을 낮춰 김성태 원내대표가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해서도 몸을 사렸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한국당 문제의 정점에는 어떤 비판도 개의치 않고 정치보복과 종북 프레임만으로 정치하는 홍 대표가 있다. 언론은 '문 정부의 괴벨스' 손아귀에 들어갔고 여론조사는 정부입김이 작용한 조작의 결과일 뿐이다. 낡은 관행과 철 지난 가치로 두텁게 벽을 친 그 주변에 사람이 몰릴 까닭이 없다. 참신한 새 피를 대거 수혈하겠다고 장담했으나, 접촉하는 사람마다 나가떨어지니 이런 ‘마이너스의 손’도 없다.
이런 한국당에 메기 역할을 한 인물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다. 모래알 같던 한국당이 천안함 폭침 주역으로 알려진 그의 방남 저지를 명분으로 통일대교 앞에서 드러눕기 연좌농성을 벌이며 모처럼 단일대오를 이뤘다. 홍 대표는 '평양올림픽' 주문이 마침내 먹혀 들었다고 느낄지 모른다.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주연 베풀듯 식사정치를 재개한 이유일 게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한국판 갈라파고스'에 갇힌 한국당에게 정치적으로 추행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0%대 지지율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괴물의 추행을 멈추려면 소리쳐야 한다. "한국당,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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