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이 한 문장 속엔 환희와 맞먹는 검은 기운이 드리우고 있었다. 천생 국제 방랑자인 뿌리다와 탕탕의 서스펜스급 제주 정착기. 시종일관 “어쩌지?”라고 노래를 불렀다.
제주에 터를 닦은 건 지난해 7월 말. 더워도 너무 덥다고, 제주도민이 혀를 내두르던 무더위 속에서였다. 이사를 했다. 나의 짐은 서울에서 완도까지 달려 고물 차에 실려 왔고, 탕탕의 짐은 프랑스에서 화물선을 타고 부산을 거쳐 제주로 장기 여행을 마친 후 도착했다. 짐을 풀어야 했다. 컨테이너에 실려온 탕탕의 짐은 나무 상자 속에 미라처럼 보존되어 있었다. 왕년의 리모델링 실력을 발휘해 사면을 강철 못으로 완고히 박은 결과물이다. 그래도 충분히 풀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미친 열기를 뿜어내는 태양은 아니라 했다. 우리를 도와 줄 인부가 필요했다. 어디에 전화해야 하지? 그렇다. 우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조차 모르는, 아노미 상태의 제주 바보였다.
문이 많은데, 어쩌지?
제주의 동서남북을 돌며 호시탐탐 터를 노리던 우리의 기(氣)는 남서부로 기울었다. 상대적으로 바람이 덜 불고 따스할 거란 탕탕의 입김도 작용했다. 그리고 발견한 애월의 한 농가 주택. 바닷가까지 딴청 피우며 걸어가도 3분이 채 안 걸린다. 전 주인의 갸륵한 리모델링으로 안거리(안채의 제주어)는 바로 생활할 만하다. 도로로 난 밖거리(바깥채)가 안거리를 마주 보는 구조는 무엇보다 도시인이 꺼림칙해 하는 사생활 보호에도 안성맞춤이다. 단층집이니 층간 소음이 없음은 물론 고성방가를 해도 아무도 참견할 이가 없다. 자유다. 서울N타워 아래 해방촌에서 옆집 코 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야 했던 지난 날은 잊어도 좋을 만큼.
처음 이 집을 보게 된 건 6월경이다. 사방으로 큰 문이 열려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게 시커먼 폐까지 씻어주는 기분이었다. 빛이 드는 툇마루가 무엇보다 좋았다. 흩날리는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책장을 넘길 그날을 꿈꿨다. 상황은 언제나 해석하기 나름이란 진리를 종종 잊는다.
막상 이사하고 나니, 이놈의 문들이 질리게도 많았다. 안거리는 총 3개의 방과 거실, 부엌과 연결된 통로형 거실 및 욕실이 있다. 그 공간을 분리하는 구조물은 문이라 해야 할지 창문이라 불러야 할지 애매했다. 거실과 부엌은 바깥출입이 가능한 큰 문이 동서 방향으로 나 있고, 방마다 문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큰 창문이 있다. 계절은 여름이다. 모기에 수혈할 봉사 정신이 아니라면, 여기에 방충망까지 달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잠가야 할 사방의 문(창문 포함)이 7세트였다. 집순이, 집돌이로 처박힐 의지가 진심으로 불타오른다. 비라도 내리면? 토네이도급 제주 바람이 집안을 홍수로 만들어버릴 테니, 탕탕과 찢어져 재빠르게 닫아야 한다. 잠이 들기 전 어느 날, 일기에 썼다. ‘문을 여닫다가 오늘 하루도 다 가버렸네. ‘
시간이 널널한데, 어쩌지?
7월과 8월 사이, 짐 정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서울 사는 친구들은 ‘놀멍쉬멍’하라고 제주도민 행세를 했다. 여전히 정착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음이 붕 떠 있다.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밥벌이도 동시 진행 중이다. 그저 서울 빌딩 숲 속 회사 의자에 궁둥이만 붙이지 않았을 뿐, 여러 프로젝트는 기어코 책상머리에 날 끌어 앉혔다. 참새는 짹짹, 제비는 깍깍, 과중한 업무에 코러스를 넣고 있었다.
오전 7시 기상이라는 신세계는 자주 맛봤다. 알람을 맞춘 것도 아닌데,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났다. 문으로 스며드는 햇빛, 자연의 알람이다. 마당에서 간단히 조식을 마친 후 바로 집 안 작업실에서 업무에 착수했다. 낮 12시 무렵, 이상한 조짐이 들었다. 오늘의 할 일이 대략 끝났다. 이래도 되는 걸까? 출근 후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점심을 먹고 회의를 빙자한 수다 미팅을 갔다가 돌아와 업무 좀 보다가 퇴근. 이 하루가 오전으로 종결됐다. 진짜 이래도 되는 걸까?! 혹 영화 ‘리미트리스’ 속 무한 능력을 갖게 되는 약이 바로 제주일까. 결국, 집으로 눈을 돌렸다. 서울에서 남는 시간을 다루는 법을 미처 배우지 못했다. 난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도시 여자이자 일 중독자였다.
정원이라 하기엔 다소 애매한, 정체불명의 뒷마당 밭을 가꿔야 했다. 여기에 채소를 좀 심어 자급자족하고 싶었다. 잡초도 솎아내야 했다. 수많은 문의 잠금 장치도 교체해야 했다. 이런저런 물품 보관용 선반도 만들어야지. 탕탕은 무엇보다 비가 내리면 조식을 먹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창문이 먼지로 불투명이라 불평했다. 그래, 닦자. ‘뽀드득 뽀드득’ 아득히 먼 젖 먹던 힘을 다 바쳐 닦았다. 밖을 겨우 바라볼 수 있는 상태가 되고 나서 시간을 확인했다. 하나만 닦았을 뿐인데 4시간이나 걸렸다. 결려오는 팔과 함께 스멀스멀 분노가 올라왔다. 내가 이러려고 이곳까지 왔나…. 이 시간에 원고를 쓰는 게 생산적이지 않을까. 한때 카페 사장을 하겠다고 방황하던 포토그래퍼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사진 찍는 일이라 고백한 바 있다. 미안하다. 그 말에 이제야 동의의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꿩이 마당에 떨어졌는데, 어쩌지?
어젯밤, “퍽!” 소리가 났다. 제주의 헤비급 바람은 많은 것을 들춰 업어치기 한다. 마당의 나약한 의자가 유력한 피해자로 보였다. 걱정스레 밖을 내다보니 의자는 그대로다. 뭘까, 1초 고민했다. 새 아침이 되고, 앞마당의 테이블에 조식을 차렸다. 곁눈질의 레이더망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육중한 생명체가 걸린다. 아니, 이것은! 꿩이다. 급히 일어서니, 의자도 놀라 자빠졌다. 세상은 미스터리다. 꿩의 죽음을 마당에서 맞이하다니, 이날은 탕탕의 생일이었다.
수박인 줄 알고 열어보니 오이였다 해도 이리 당황스럽진 않을 거다. 대체 어찌하여 너는 이곳에 안식하려고 했을까. 감전사였을까. 까치발로 다가가니 목이 움직인다. 눈까지 떴다! 그 사이 제주도민 친구와 내가 아는 한 가장 똑똑한 사람에게 전화를 돌렸다. 어쩌지? 제주도민이자 선배 작가는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다. “물 주고 수건으로 감싸. ‘쓰담’해줘.” 곁에 가는 것만 해도 심장이 쫄깃한데, 마사지를 하라? 누구는 경찰에 신고하란다. 꿩이 범죄자는 아니지만, 그 편이 훨씬 쉬워 보였다. 경찰은 현명했다. 어리석은 내게 다산콜센터(064-120)로 전화해 제주 야생동물보호소로 문의하란다. 보호소와 접선하니, 집에 창문이 크냐고 물었다. 점쟁이인 줄 알았다. 꿩이 본래 시력이 좋지 않고 잘 날지 못해 창문에 부딪혀서 떨어졌단 추론이었다. 해결사는 1시간 후 찾아올 것이다. 그 사이 양심상 물이라도 건네려던 찰나, 이 녀석이 번쩍 일어섰다. 이내 가까운 부엌 쪽 방충망으로 달려가 헤드뱅잉을 했다. 나도, 정신 차린 이 녀석도 이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듯했다. 일단 대문(이라고 하기엔 허리춤까지 오는 문)을 열었다. 마당을 갈지자로 달리던 그는 밖으로 도주했다.
부산스러운 나와 달리, 탕탕은 느긋하게 아침을 즐기고 있다. 마당에 쓰러진 꿩을 처음 본 순간, “어쩌지?”란 나의 물음에 “난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라고 답을 했던 그였다. 이제야 이해가 됐다. 꿩을 요리할 도구가 없(어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꿩=꿩 요리’로 귀결짓는 너의 머릿속, 요리로 A-Z가 끝나는 프랑스인이시여. 낯설다. 그리고 모르겠다. 나에게는 중남미 여행의 그 어떤 고행보다 노곤한 ‘어쩌지?’ 시리즈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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